발보아 호수와 마음의 호수/'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2011.06.21 17:00
'이 아침에' 6-21-2011
발보아 호수와 마음의 호수
조옥동/시인
발보아 호수는 발보아 파크의 서쪽에 있는 인공호수다. 어찌 보면 걸어가는 오리모양을 하고 있어 남북으로 기다란 호수의 한 바퀴를 돌려면 20분쯤 걸린다. 사계절이 뚜렷치 않은 남가주에 철따라 이렇게 많은 철새들이 모여드는 호수가 가까이 있음은 샌퍼낸도 밸리 주민에겐 행운이다.
산책을 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수많은 생물이 생동하는 호수를 바라보면 매일 살아가는 것이 기적 같다는 각박한 생각은 멀리 밀려간다.
등나무 밑 의자에 앉아 동편을 바라보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시티의 고층건물과 할리우드 산 동내가 한눈에 들고 고급주택이든 아니든 구별 없이 멀리서는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호수의 남측에서 발보아 산이나 채츠워스 쪽을 바라보면 유채꽃이 피는 봄철엔 부드러운 능선은 노란 너울을 덮고 여름엔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듯 말끔하다. 호수에서 보이는 사방은 호수물의 마력인지 정겹고 평화롭기만 하여 도시인의 마음을 달래준다. 간혹 떠나야 할 철새가 아예 주저앉아 텃새가 되는 이유를 알만하다.
이 호수의 주객인 청둥오리와 백조는 같은 오리과인대도 따로 놀고 흰 두루미도 검은 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유류상종이란 새들 세계에서 나온 단어란 생각이 든다. 작은 텃새부터 오리 고니 거위 등 철따라 바뀌는 조류들의 모습은 종류마다 몸과 깃털의 모양과 색갈이 다르다. 마치 이 호숫가에 모여드는 가지각색 인종들이 피부색부터 얼굴이 다양하듯 주변의 나무들, 풀밭의 잡초 하나하나가 똑같은 것이 없다.
이들 모두가 어울려 자연스런 풍광을 만든다. 아침 해가 뜨고 다시 노을 속에 가라앉듯 싹 트고 꽃피며 열매를 맺는 동안 솟아나던 기운은 차츰 조락하고 사라진다 할지라도 호수는 변화를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별을 품고 바람을 달래고 동물들에겐 먹이를 공급하며 사람들에겐 위로와 휴식을 준다.
머리위에 하얀 반달을 보면 물 길러 가는 할머니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주고 싶다는 반달노래나, 냇물아 멀리 퍼져가 건너편에 앉아 나물 씻는 누나의 손등을 간질어 주라는 동요를 낮게 소리 내보고 또는 서툰 걸음마를 하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보스턴에 있는 손자생각으로 달려가 안아주고 싶다.
조용히 명상에 잠긴 사람, 낚시하는 사람, 정답게 포옹하고 있는 젊은 데이트 족과 땀 흘리며 걷는 사람들, 때로는 악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아주는 구릅들, 휠체어 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그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서있는 이도 있다.
남편과 함께 걸으며 평소엔 말 못한 가슴속 깊은 곳의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또는 그의 생각도 엿보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받노라면 금세 한 바퀴를 돈다. 길을 가는 동안 내 곁에 동행자가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남은 여정에서는 서로 신뢰와 존중하는 마음을 더하며 살아야겠다.
인생이란 서로 마주잡고 가야 할 무겁고 또한 깨지기 쉬운 그릇이다. 이제껏 격랑과 고난 속을 헤쳐 오느라 각각 품었던 사랑과 미움 원망과 연민까지 모두 용해하여 밑이 보이지 않는 발보아 호수 같다.
발보아 호수는 찾아 온 모든 이들에게 일렁이는 마음의 호수가 되어 종일 물결 짓고 있다. 서쪽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긴 그림자 나란히 호수를 떠난다.
발보아 호수와 마음의 호수
조옥동/시인
발보아 호수는 발보아 파크의 서쪽에 있는 인공호수다. 어찌 보면 걸어가는 오리모양을 하고 있어 남북으로 기다란 호수의 한 바퀴를 돌려면 20분쯤 걸린다. 사계절이 뚜렷치 않은 남가주에 철따라 이렇게 많은 철새들이 모여드는 호수가 가까이 있음은 샌퍼낸도 밸리 주민에겐 행운이다.
산책을 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수많은 생물이 생동하는 호수를 바라보면 매일 살아가는 것이 기적 같다는 각박한 생각은 멀리 밀려간다.
등나무 밑 의자에 앉아 동편을 바라보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시티의 고층건물과 할리우드 산 동내가 한눈에 들고 고급주택이든 아니든 구별 없이 멀리서는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호수의 남측에서 발보아 산이나 채츠워스 쪽을 바라보면 유채꽃이 피는 봄철엔 부드러운 능선은 노란 너울을 덮고 여름엔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듯 말끔하다. 호수에서 보이는 사방은 호수물의 마력인지 정겹고 평화롭기만 하여 도시인의 마음을 달래준다. 간혹 떠나야 할 철새가 아예 주저앉아 텃새가 되는 이유를 알만하다.
이 호수의 주객인 청둥오리와 백조는 같은 오리과인대도 따로 놀고 흰 두루미도 검은 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유류상종이란 새들 세계에서 나온 단어란 생각이 든다. 작은 텃새부터 오리 고니 거위 등 철따라 바뀌는 조류들의 모습은 종류마다 몸과 깃털의 모양과 색갈이 다르다. 마치 이 호숫가에 모여드는 가지각색 인종들이 피부색부터 얼굴이 다양하듯 주변의 나무들, 풀밭의 잡초 하나하나가 똑같은 것이 없다.
이들 모두가 어울려 자연스런 풍광을 만든다. 아침 해가 뜨고 다시 노을 속에 가라앉듯 싹 트고 꽃피며 열매를 맺는 동안 솟아나던 기운은 차츰 조락하고 사라진다 할지라도 호수는 변화를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별을 품고 바람을 달래고 동물들에겐 먹이를 공급하며 사람들에겐 위로와 휴식을 준다.
머리위에 하얀 반달을 보면 물 길러 가는 할머니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주고 싶다는 반달노래나, 냇물아 멀리 퍼져가 건너편에 앉아 나물 씻는 누나의 손등을 간질어 주라는 동요를 낮게 소리 내보고 또는 서툰 걸음마를 하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보스턴에 있는 손자생각으로 달려가 안아주고 싶다.
조용히 명상에 잠긴 사람, 낚시하는 사람, 정답게 포옹하고 있는 젊은 데이트 족과 땀 흘리며 걷는 사람들, 때로는 악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아주는 구릅들, 휠체어 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그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서있는 이도 있다.
남편과 함께 걸으며 평소엔 말 못한 가슴속 깊은 곳의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또는 그의 생각도 엿보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받노라면 금세 한 바퀴를 돈다. 길을 가는 동안 내 곁에 동행자가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남은 여정에서는 서로 신뢰와 존중하는 마음을 더하며 살아야겠다.
인생이란 서로 마주잡고 가야 할 무겁고 또한 깨지기 쉬운 그릇이다. 이제껏 격랑과 고난 속을 헤쳐 오느라 각각 품었던 사랑과 미움 원망과 연민까지 모두 용해하여 밑이 보이지 않는 발보아 호수 같다.
발보아 호수는 찾아 온 모든 이들에게 일렁이는 마음의 호수가 되어 종일 물결 짓고 있다. 서쪽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긴 그림자 나란히 호수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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