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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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밤에 끓이는 커피

 

   
                    한혜영(韓惠英 1954- )


 

 

물이 끓어오르면서 주전자가
늑대 울음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도 저렇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갈 데 없어 서러운 늑대처럼
사랑을 잃은 그도 저렇듯
우-우우 소리를 냈었지요

 

못질해 두었던 시간의 가슴을
열어 봅니다 푸르디 푸른 별빛!
천개의 얼음발로 벼랑을 타고 있습니다
아슬아슬 놓였던 발자국마다 
일어서는 은빛! 비틀거리는
늑대 가슴엔 아직도 한 개의 달이
우-우우 핏빛입니다

 

미친 바람이었을 테지요
그 원통한 울림대
밑바닥까지 쑤∼욱 손을 집어넣고
응고 직전의 슬픔 휘휘 저어댔던

회한이 나의 오장(五臟)에서 그의 울음을
검푸른 늑대울음과 합성된
그의 울음, 하늘도 덩달아
울컥울컥 달빛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주문학」 통권 제23호(2003년 여름호)에서 한혜영 시인의 「한밤에 끓이는 커피」를 발췌하였다. 어지간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대개 아침이나 낮에 끓이는 일이 예사인데 밤에 커피를 끓이다니! 더구나 그것도 한밤에, 그 의아함에 눈길이 끌렸기 때문이다.

 

  한혜영 시인은 제목에서부터 독자를 끌어안는 능력을 보이고 있다. 한밤에 끓이는 커피이기에 아침이나 낮에 끓이는 커피와는 사뭇 그 맛이 다른데 있다. 4연 22행을 이으면서 적절히 끓여(읊어)낸 커피이건만 평소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는 너무도 다른 맛과 멋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한혜영 시인의 고독과 낭만을 만나게 된다.

 

  커피가 소리를 내면서 끓고 있는 자리에 한혜영 시인과 늑대와 어떤 사람(남성)이 앉아 있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면서 끓어오르는 커피에서 늑대의 울음으로, 갈 데 없어 서러운 그(남성)의 울음으로 感情을 移入시키고 있다.

 

  1연에서는 이렇게 처절함을 聽覺에 호소하고 있지만, 2연에서는〈푸르디 푸른 별빛〉, 〈천개의 얼음발〉, 〈일어서는 은빛〉, 〈핏빛〉 등의 이미지를 視覺에 호소하고 있다. 이런 빛들은〈못질해 두었던 시간의 가슴을 열어〉 보았을 때, 즉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나타난 별빛들이다. 이 빛들은 한혜영 시인의 분위기를 浪漫的으로 照明하고 있다.

 

  3연에 끓고 있는 커피는 구수한 내음(香)이 아니라 미친 바람과 원통한 울림대로 나타난다. 심령의 밑바닥에 깔린 슬픔은 아직 응고되지 않았다. 이것을 꾸역꾸역 끄집어내는 4연은 〈검푸른 늑대 울음〉으로 視聽覺에, 〈달빛〉으로 視覺에, 共感覺의 호소를 통한 입체적 효과를 나타낸다.

 

  〈한밤에 끓이는 커피〉는 인간 자신의 고뇌를 앓고 있는 내면을 밖으로 형상화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한혜영 시인의 상상력이다. (2003. 12. 「미주시문학」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