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학교 후보생 / 김영교

2011.08.23 05:33

김영교 조회 수:54 추천:2

LA 이곳서 만나기로 한 5일 전 산호세에서 쓸어져 7시간 최첨단 수술도 보람없이 코마에서 못 깨어난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시신이 서울에 옮겨졌을 때 이해인 수녀를 선두로 가슴아파한 사람들 중 장영희가 있었다. 친구는 장교수의 책 (김점선의 삽화) 홍보대사처럼 이곳 동창들에게 보급해 온 장본인이다. 이것이 장영희의 모든 저서가 우리 집 책 가족이 된 경로이기도 하다. 그해 서울 방문중일 때 신수정은 모차르트의 밤을, 길건너 수정식당에서 김미자, 김점선, 고영자, 나, 이렇게 넷은 만났고 장영희(불참)의 <생일>과 <축복>을 축하하며 점선이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댄게 어제 같기만 하다. 생일은 밟고 올라가야 하는 축복의 계단, 서로 부축하며 오르고 있었다. 장선용친구의 <며느리에 주는 요리책>을 영역한 내 친구 미자가 먼저 우리 곁을 떠나갔다. 화가 김점선도 암으로<전선뎐>전기를 펴내고 철새처럼 훌훌 날아갔다. 금년 3월이었다. 5월에는 후학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장영희교수의 작고 소식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너무 아깝고 너무 애석하다. 세 사람이 남긴 빈자리, 엄청나 휘청거린다. 그중 나이 제일 어린 장영희교수는 좀더 오래 살아남아야 했는데 말이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 문학계뿐이랴! 장영희 교수가 그의 영미시 산책집인 “생일”이라는 책에 “진정한 생일은 지상에서 생명을 얻은 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 1급 장애자였지만 굴하지 않고 유명한 영문학자로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수필가, 시인, 번역가로 활약하다가 9년간의 암투병을 마치고 지난 5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무너질 때 어떤 위안의 말이 적합하랴! 우리 인간 모두는 <고(故) 아무게>라 불리 울 하늘학교 후보생이 아닌가. 꽃띠 시절 서울대학 다니는 언니로 인해 장왕록교수를 알게되었고 그에게는 늘 책 많이 읽는 아릿다운 어린 딸이 있었다. 그 딸은 다리가 성치 않은 탓으로 외출대신 늘 집안에서 공부만 했다. 장왕록교수가 젊은 여자들의 다리를 유심히 보곤해서 오해 산적도 있었는데 다 장애인 딸은 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번역을 도운 영리한 그 딸이 바로 장애인을 입학시킨 서강대의 장영희 교수가 되었다. 얼마 전 이곳 정음사에서 북 사인회 및 피오피코 도서관 문학 세미나에 후배 (사대부고 23회)를 위해 나는 사회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밝은 미소와 큰 눈빛을 맞댄 마지막 체온 나눔이었다. 그가 건네준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 그녀의 육필이 생생한 색깔을 띄고 있다. ‘김영교 선배님: 문학의 숲, 생명과 희망의 숲, 함께 지켜나가요.’ Love 장영희' 라고 쓰여있다. 장교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어디 나하나 뿐이랴. 어느 신부가 말했듯이 유명한 칼릴 지브란의 <눈물과 미소>가 적용되는 여자, 가혹하리 만치 고통의 삶을 눈물 속에서 희망이란 꽃으로 피워올려 우리에게 넉넉하게 나누어 준 사람, 지금 그 사람을 그리는 글을 쓰며 슬픈 마음을 달래 본다. 스스로 고통스런 삶을 살면서도 그 고통 안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불우한 사람에게 깊은 연민과 관심으로 위로가 되고자 무던히 애쓴 신앙인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선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장교수, 본인의 표현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이 기적이었다면 이제 살아갈 기적은 우리의 몫이며 마지막 기적은 물론 장교수에게도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갈 기적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었다. 죽음이 가시적인 어떤 끝이 아니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주소변경, 영원한 삶으로에 진입임을, 다만 죽음을 통해서만 부활에 동참 할 수있는 경로임을, 하나님을 뵈옵는 영광이 얼마나 클것인가를 마음속으로 헤아려보며 고개숙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삶이 선물인 것처럼 죽음도 또한 선물이지 않는가. 생명질서의 고리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가슴은 기뻐하지 않고 눈물을 앞세운다. 산자에 대한 창조주의 배려를 깨우치는데 장교수가, 미자가 점선 화가가 하늘학교에 먼저 입학 하고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 마음 한 가운데에 그렇게 서있다. -'생일’에 장영희 교수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