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소리
2011.11.04 14:14
한 30년쯤 전이겠지.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주 우스웠던 기억이 있다.
어느 아버지는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늘 생각했다. 거기다 싼 값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 사서 그 음식을 먹여 키워놓은 개가 나중에 목돈을 마련해 주기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시골의 오 일 장이 설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탁했다.
“ 얘야, 이번 장날에는 강아지 한 마리 사오너라.”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 아들은 잊은 것인지, 아니면 아들이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인지 “예”라고 대답만 할 뿐 사오지를 않았다. 끈질기게 사오지 않는 아들 못지않게 매 장날마다 아버지의 성화가 끊이질 않았다. 어느 장날, 아버지가 또 다시 아들에게 부탁했다. “얘, 이번 장에는 꼭 좀 개 한 마리 사오렴.” 그러자 아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개소리(?) 좀 그만하세요.” 그 말은 강아지 사오란 말씀을 이제 그만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 아버지에게 결코 해서는 않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개소리. 한국적 사고로 볼 때, 참 나쁜 말이다. 한국에서는 ‘개~’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거의 모두 나쁜 뜻이다. 부정적인 의미로 전달된다. 잘못된 말이나 엉뚱한 이야기를 ‘개소리’라 한다. 남을 욕할 때, 그 사람이 아주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개 같은 사람’이다. 정리정돈이 되지 않아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상태이거나 많이 복잡하다는 의미에서는 ‘개 판’이다. ‘개’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이는 욕이다. 결코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치욕적인 말을 듣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말을 쓰는 사람도 좋은 사람으로 보지는 않는다. 처음 시초가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왜 한국에서는 ‘개’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다 나쁜 의미가 되었을까.
88올림픽 때 개고기를 먹는 한국의 문화 때문에 말이 많았다. 올림픽 동안 온 국민은 개고기 판매를 금지시키고 먹는 것을 자제하게 했으니 국가적으로 망신을 피하자는 의미였겠지.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읽었다. 저자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미국친구와 영화를 보러갔다. 그 영화는 인도영화였는데 인도사람들이 개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영화가 마치고 미국친구는 화가 나서 ‘야만인’이라며 인도인들을 욕을 했다. 그 정도에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친구는 갑자기 저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한국에서도 개를 먹느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하던 저자는 움칫 놀라 잠시 망설였다. 거짓말해야 하나, 아니면 미개인이란 말을 들어야 하나. 망설이다 대답한 그 저자의 말은 참 지혜로웠다.
“한국에서는 약으로 쓰이기도 하지.” 그 옛날 한국에 흔한 결핵환자들이나 몸이 허약한 사람들에게 개고기는 약으로 쓰이기도 했으니까.
처음 미국에 와서 놀란 일이 많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던 내가 이 넓은 미국에 와서 놀랄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나. 그 중의 하나가 ‘개 무덤’이었다. 개를 위한 공동묘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무덤에는 꽃들이 놓여있고, 작은 비석에는 사랑의 말들도 쓰여 있었다. 개가 사람인가? 그게 벌써 12년 전이니까 나에게는 그 모습이 참으로 생소했다. 미국 온지 한 일 년쯤 됐을까? 로스엔젤레스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아이를 보냈다. 거의 무료로 수영을 가르쳐 주는 곳이었다. 아이가 수영이 끝날 때 까기 기다리며 미국사람과 짧은 영어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가족사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딸과 둘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다섯 식구가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명씩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 했다. 그 중 한 명(?)의 이름을 부르더니 잠시 멈추어 “우리 집 개다”라고 말했다. 개를 자신의 딸들과 함께 이름을 부르며 가족이라고 소개하는 그녀가 이해되기까지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한국도 개를 사랑하는 것이 미국 못지않다. 한국에서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 부르고 있다. 대단히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이 이제는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한다. 아니 도리어 한수 위다. 미국의 한 수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한국은 개나 고양이가 ‘반려동물’이지만 미국은 아직 ‘반려동물’이라 부르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늦게 시작한 한국인의 동물에 대한 사랑이 미국보다 더 빨리 전진하는 것인가? 역시 한국은 모든 면에서 발전이 빠른가보다. 뭐든 늦게 시작해도 진도는 빠르다. 그렇다면,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면‘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말도 느낌이 바뀌게 될까?
나도 개나 고양이를 좋아한다. 길 가다 예쁜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을 보면 잠시 멈추어 바라본다. 그럴 때 기분도 좋고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에게 예쁘다고 말하며 웃어준다. 어릴 때 우리도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몇 번 있다. 문론 집 마당에서. 그러나 아직 집 안에서 개를 키우거나 침대에서 함께 자는 체질까지 가진 못했다. 그들을 사람처럼 대우하고 싶지 않음은 아직도 나는 ‘야만인’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 건가 싶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8919 | 바람 사냥 | 성백군 | 2011.11.07 | 47 |
| 8918 | 축시/오레곤문학회 창립10주년/정용진/ | 정용진 | 2011.11.05 | 44 |
| 8917 | 알을 삼키다; 세상을 삼키다 | 박성춘 | 2011.11.05 | 48 |
| 8916 | 고 장왕록 교수님 회상 - 장영희 교수의 타계를 애도하며 | 김수영 | 2011.11.05 | 40 |
| » | 개 소리 | 이영숙 | 2011.11.04 | 43 |
| 8914 | 헬로윈 (Halloween) | 박성춘 | 2011.11.02 | 41 |
| 8913 | 공기가 달다 | 박성춘 | 2011.11.02 | 44 |
| 8912 | 텃밭, 이제는 / 김영교 | 김영교 | 2011.11.02 | 50 |
| 8911 | 보름달 | 윤석훈 | 2011.11.10 | 54 |
| 8910 | 사랑의 묘약 | 최영숙 | 2011.10.31 | 49 |
| 8909 | 산동네 불빛들이 | 강민경 | 2011.10.30 | 60 |
| 8908 | 德人之生 | 정용진 | 2011.10.30 | 48 |
| 8907 | 양로병원을 찾아 갔던 날/'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 조만연.조옥동 | 2011.10.29 | 43 |
| 8906 | 새벽의 독백 | 최상준 | 2011.10.29 | 52 |
| 8905 | 남편의 눈물 | 장정자 | 2011.10.27 | 43 |
| 8904 | 정녕 가려는가? | 장정자 | 2011.10.27 | 49 |
| 8903 | 밤 바다 | 이상태 | 2011.10.27 | 51 |
| 8902 | 나이아가라 폭포( Naiagra Falls) | 정용진 | 2011.10.27 | 45 |
| 8901 | 주시 당하는 것은 그 존재가 확실하다 | 박성춘 | 2011.10.25 | 47 |
| 8900 | 녹이고 싶은 앙금 | 노기제 | 2011.10.25 | 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