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11.12.09 08:19

이영숙 조회 수:58


  낯선 땅이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 나라가 어떠한 곳인지도 몰랐다.  어리둥절하여 두리번거리며 촌티를 내고 있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미국을 소개하던 분이 미국을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였다.  일 년쯤 지난 후 그랜드케년을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고 광활한 사막.  몇 시간을 갔는데도 인가가 없는 땅.  주유소를 만나면 차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그 흔한 주유소를 만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땅이었다.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넓고 큰 땅이었다.  
  사막의 자수아 나무가 특이하고 기이하여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선인장이란 집안에서 키우는 화초에 불과하다.  이렇게 야생으로, 사철 싱싱한 모습으로 피어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돌 하나, 가뭄에 억지로 피어있는 작은 풀 한 포기도 신기했다.  손톱만큼 작은 꽃을 피워놓고는 무슨 큰일이라도 한 듯 고개 들고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들꽃도 아름다웠다.  
  그랜드케년의 그 광경이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놀라 말을 잇지 못할 것이다.  그냥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다시 다무는 일을 잊을 다름이다.  그 아름다움을 예찬한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사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멋 떨어진 광경이 아니던가.  어찌 말로, 글로 그 위대함과 위엄을 표현한단 말인가.  역시 들었던 대로 미국은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임이 틀림이 없다.
  이곳 로스엔젤레스는 일 년 내내 옷장에 같은 옷이 걸려있다.  겨울에도 따뜻한 낮에는 얇은 옷을 입어야 하고, 여름에도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약간은 따뜻하게 옷을 입어야한다.  사계절이 고만고만하여 참 좋은 날씨다.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다.  어른들의 신경통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습하지 않아 늘 신선한 날씨가 이어진다.  한 겨울도 따뜻하다.  그러나 한 시간만 가면 눈을 볼 수 있는 산이 있다.  한 삼십분만 차를 달리면 바다가 있다.  처음 미국에 와 11월에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보고 얼마나 신기하던지.  여러모로 참 좋은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변치 않고 내 가슴에는 한국의 자연이 남아있다.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그 모습이 가슴에 늘 살아있다.  인터넷이나 잡지 등에서 한국의 자연을 대할 때는 가슴 설레는 순간을 참을 길이 없다.  봄에 피는 아지랑이, 진달래꽃 살구꽃과 함께 샛노란 개나리.  어찌 그 아름다움을 다른 것으로 대신할 것인가.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본 사람은 결코 그 내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녹음 짙은 여름 산과 그 푸른 바다가 내 고향에 그냥 있다.  알록달록 가을단풍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지 않은가.  눈 덮인 겨울 산은 또 어떠한가.  그 어느 것 하나 이 세상의 다른 것과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유난히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남다르기 때문은 아닐 게다.  한국인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 있지 않을까.  박완서님은 “내가 고향에서 그리워하는 건 무엇일까. 산천인가, 초가지붕이 의좋은 마을인가, 어릴 적 놀던 동무들인가, 순박한 인심인가.”라고 했다.  글쎄다.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아니 솔직히 그 모든 것이 아우러져 고향의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겠지.  어느 하나인들 뺄 수 있을까.  그 중에도 난 고향의 산천이 더욱 그립다.  
  내 고향은 뒤로는 산이 우리 마을을 둘렀고, 앞에는 태평양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강도 있는 곳, 그 곳이 내 고향이다.  어릴 때, 칡뿌리 캐러가는 친구를 따라 산으로 올랐지만 남들이 바구니에 담을 만큼 캤는데도 난 친구의 칡 한 뿌리 얻어온 것이 전부였다.  얻어먹은 칡뿌리는 어찌 그리 맛있던지.  봄에는 진달래 따다가 군것질삼아 먹었던 아름다운 기억도 있다.  산골짝에서 오십 개의 내가 모여 강을 이루었다 하여 ‘오십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우리 마을의 강에서 멱을 감았던 일도.  수영 할 줄을 몰라 얕은 물가에서 겨우 땅 집고 헤엄치는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는 그것도 참 재미난 일이었다.  
   한국에는 그랜드케년과 같은 곳이 없다.  털털거리는 산골도로가 아니면 한 시간도 못 되어 주유소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은 정말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고 살아간다.  한국의 자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고 광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기자기하고 조그마한 한국 강산이 오늘도 그립다.  콧등이 시리도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