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The Prodigal Son)
金秀映
‘돌아온 탕자’는 불신자들도 성경에서 나온 말씀이란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성경 말씀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가 아버지로부터 재산 분 깃을 받아들고 세상에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 급기야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극진한 아버지의 사랑환대를 받는다는 내용이다(눅15:11-32).
돌아온 탕자가 유명해 진 것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명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명화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들이 겨울 궁으로 사용하던 곳이 있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그곳에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는 최고의 교회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는 이작품에서 특유의 명암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사이의 용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아버지의 모습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 안에 드러나는 신성이라고 볼 수 있다. 수염을 기른 반 실명 상태의 노인, 황금빛의 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돌아온 자식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절대적인 자애와 조건 없는 사랑, 영원한 용서와 같은 신성의 실재를 보게된다.
여기서 인성과 신성,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과 강인함, 늙음과 영원한 젊음이 함께 표현되고 있다. 거의 눈 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등을 육체적인 시력이 아니라 내적인 눈으로 보면서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의 핵심은 아버지의 손에 있다.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있고 이 그림의 다른 두 목격자들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쏠려 있다. 그 안에서 자비가 육을 취한 의미와 화해와 용서, 치유가 함께 담겨 있다. 아들 뿐 아니라 아버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반 장님인 노인이 흐느끼면서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처받은 아들을 축복하는 모습에서표현해주고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권위의 남성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이 그림의 손에서부터 드러나는데 재미있게도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이다. 일종의 누르는 힘과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특별히 엄지손가락이 그러하다.
그러나 오른손은 얼마나 다른까? 이 손은 누르거나 잡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세련되고 부드러우며 섬세하다. 손가락들이 모아져 있고 아주 우아하다. 이 손은 아들의 둥 위에 부드럽게 얹혀져 있다. 그것은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엄마의 손인 여성의 손인 것이다.
나는 지난 연말 자동차를 도적맞고 고심한 적이 있었다. 어끄저께 보험회사로부터 자동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어찌나 기뻤던지 ‘돌아온 탕자’처럼 내 자동차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동차가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발이 되어 동고동락해온 아끼던 차라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그렇게 자동차가 귀할 수가 없었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보통 도적 맞은 차를 찾게 되더라도 보통은 차가 많이 훼손(엔진을 빼 간다던가 중요한 부품은 많이 없어지는데)된 상태에서 차가 발견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무 이상이 없고 차 바디에 스크레치가 있고 차 속이 좀 지저분하다는 정도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곳까지 운반해 오는데 시간이 걸려서 아직 이곳에 도착은 안 했지만 얼마나 천만 다행한 일인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아끼던 차를 잃어버렸을 때 마음이 아려오고 아팠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과 조금이라도 멀어져가며 세상으로 빠질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게 했다. 자동차 한 대를 잊어버려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 주시니 얼마나 큰 은혜이고 사랑인가!
자동차를 잃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로 빚어진 잘못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느슨해지고 방심할 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다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뼈저린 교훈을 얻은 셈이다.
헬스클럽에 가면 자동차 열쇠를 항상 옷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며 locker 를 자물쇠로 꼭 잠가야 하며 자동차 열쇠 한 개만 갖고 다녀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걸쳐 놓기만 했다. 열쇠를 잃어버려서 그랬지만, 새로 자물쇠를 사서 잠가야 하는데도 ‘설마 도적 맞겠나’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다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이다. 설마가 사람 잡은 것이었다.
도적질한 여자가 처음엔 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어 복을 빌어 주었더니 마음의 평안을 찾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게 되어 기쁨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녀를 위해 기도한 결과 그녀가 차를 되돌려주었을까 하고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차 속에 둔 성경을 읽어 보았을까 아니면 크리스챤 음악 CD를 들어 본 것일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분명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자녀의 고통의 신음을 듣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나 또한 하나님 앞에 돌아온 탕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은 아니라고 우겨 볼 지 몰라도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 볼 때 분명히 ‘돌아온 탕자’가 아니었던가 생각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망극하다. 자동차를 한 번 잃었다가 찾음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얻다니 생각만 해도 감사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