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012 '이 아침에'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이다
          -서로에게 ‘선물’ 이 되는 새해)-

                                        조옥동/시인

덕담을 주고받으며 새해 첫 주를 보냈다. 서운함도 미움도 서로 풀고 없었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따뜻이 감싸 안고 환하게 웃었다. 평소에 표현치 못한 고마움을 전하는 카드나 선물을 보내고 받으며 즐거웠다.
한해를 보내며 감사와 사랑의 뜻으로 가족, 친구, 이웃끼리 주고받는 선물은 꼭 값비싸지 않아도 정성이 중요하다.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여러 사정으로 아직 건네지 못한 선물꾸러미 몇 개가 숙제처럼 남아 있어 빨리 전하고 싶다.

나는 정초엔 곱으로 아니 세배로 축하를 받는다. 우연케도 설날이 생일이라 ‘해피 뉴 이어!’ 하고 곧 이어서 ‘해피 버스데이!’ 인사를 받으면 새해가 나를 위한 축복의 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누구의 표현대로면 오히려 손해 보는 생일을 맞는지 모른다. 떡국에 밀려 미역국을 끓임은 고사하고 설날 첫 상을 차려내는 주부의 역할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성탄절카드를 받고 며칠 후 생일카드를 또 받는 미안함도 있는데, 올 해는 두 돌 반 된 손자의 카드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동그라미 몇 개와 여러 개의 선이 사방으로 날 듯 연필로 나비를 표현한 카드는 유명화가의 그림이라도 얻은 기분이다. 할머니 생일카드라며 어린 아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큰 딸이 저희 내외의 것과 함께 보낸 깊은 정이 고맙다.

그런데 해마다 초하루 아침에 받는 생일 카드를 처음 못 받았다. 설날이 첫 주일이라 서둘러 교회에 갖다 왔다. 예배를 보고 와서도 이유야 어떻든 섭섭함이 은근히 화가 날 정도라 뒤뜰로 나갔다. 가지 잘린 겨울나목을 잔잔하고 투명하게 비추고 있는 수영장주변은 하늘까지 내려앉아 쓸쓸하고 고요했다.
물에 빠져 떠 있는 날 벌 한 마리를 보고 측은해 손바닥으로 떠 올리는 순간이었다. 따끔했다. 잠시 후 손가락이 붓고 불편할 정도로 며칠을 아팠다. 은혜를 독으로 갚은 벌이 괘씸했다. 아마도 벌은 그렇게라도 살아있음을 확인 해주려 했겠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새해를 맞을 무렵은 사람들의 마음이 선해지고 따뜻해진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잘못을 후회하고 은혜를 깨닫고 인정이 살아난다.
겸손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신이 새롭게 되기를 희구한다. 그렇게 열심히 뉘우치며 용서를 구했던 내 마음이었지만 꼭 받고 싶었던 카드 한 장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고 잠시나마 평온을 잃었었다. 벌이 마지막 죽을힘을 써 변덕스런 내 생각을 쏘았다.

가장 귀한 선물은 항상 없는 듯 같이 있어주는 그 존재자체가 선물임을 잊었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미주까지 이민을 와서도 두세 사람만 건너면 모두가 이런저런 관계로 연결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서로가 이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잇대어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환자와 의사, 상인과 소비자, 국가와 국민,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이다. 서로 복을 빌어주는 덕담으로 시작된 착한 마음들이 깊은 옹달샘처럼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