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 인간 · 기계 인간/'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2012.02.17 21:47
2-17-2012 '이 아침에'
기계 · 인간 · 기계 인간
조옥동/시인
출근하면 곧 흰 랩코트로 바꿔 입는다. 랩코트는 움직일 때 위험과 약품으로부터 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온 정신을 저절로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또한 실험실에서 랩코트를 착용치 않으면 안전수칙에 어긋난다.
아침 실험실에 들어서면 팽팽하게 느껴지는 긴장감이 수족관의 깊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느낌이다. 높은 천정과 하얀 벽 그리고 밝은 조명아래 많은 기기들이 수초처럼 꽉 차 있다.
우리 연구실엔 여섯명의 스태프들이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유영하듯 조용히 움직인다. 언어는 있어도 소리는 없고 모든 대화내용은 기록과 프린트로 소통된다. 하루 생활에서 실험기구들과의 대화가 동료 간의 대화보다 오히려 많다.
마이크로 또는 나노라는 극소의 단위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실험은 순간순간 발생하는 상태 변화를 관찰하려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이 우리는 기계처럼 기계 앞에 앉아있을 때가 많다. 어떤 실험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므로 사람이 기계같이 보인다.
간혹 기구들이 빨간 등을 번쩍거리고 이상한 불협화음을 내는 긴박한 순간도 발생하는데 기기가 작동의 오류를 감지하고 자신을 제대로 바르게 다루어 주기를 바라는 신호이다. 인간의 실수를 용납지 않고 실험기구가 말을 한다. 실제로 용납해서도 안 된다. 연구결과가 허위 논문이나 과장으로 전락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 앞에서도 유혹의 최면에 빠질 만큼 허약하다.
많은 기구는 정밀 정확도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한다. 생명공학은 이런 기계의 물리적 기능을 도입하고 특별한 생체조직에서 채취한 세포를 배양하고 연구하여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규명하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한 의술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두뇌나 인체의 구석구석을 촬영하여 보여준다.
사람의 손이 할 수 없는 실험을 인간이 만든 기계가 대행한다. 체온도 감성도 없는 차가운 금속물체가 인간을 조종하고 복종케 한다. 웬만한 집보다 비싼 고성능 현미경 같은 첨단 실험기구를 사용할 때는 결함이 생기거나 작은 부품이 손상되는 경우 수리비가 막대하여 여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기계가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취급되는 모순을 종종 경험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간로봇을 혼동할 미래가 도래하고 있다.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게 수천의 감정을 수용하고 있는 그릇,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계는 언제쯤 나올 것인가. 퇴근시간, 랩코트를 벗고 종일 긴장된 일에서 풀려 나오면 출근 때와는 다르게 자유스런 상념에 빠지는 나를 발견 한다
사람의 변덕스런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 나에겐 난해한 시를 읽는 것처럼 어렵다. 시상이 명료하여 쉽게 읽혀지는 시가 있는가 하면 거듭 읽어봐도 이해가 안 되는 때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생화학실험 결과를 정확히 읽어내는 연구실 기계처럼 상대방의 진실한 마음을 읽어내는 기계가 발명될 미래, 우리에겐 난해한 시를 쉽게 읽어주고 그래서 시가 사랑받는 시대를, 인간과 과학, 문학과 과학이 융합을 이루는 신화 같은 시대를 그려본다.
기계 · 인간 · 기계 인간
조옥동/시인
출근하면 곧 흰 랩코트로 바꿔 입는다. 랩코트는 움직일 때 위험과 약품으로부터 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온 정신을 저절로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또한 실험실에서 랩코트를 착용치 않으면 안전수칙에 어긋난다.
아침 실험실에 들어서면 팽팽하게 느껴지는 긴장감이 수족관의 깊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느낌이다. 높은 천정과 하얀 벽 그리고 밝은 조명아래 많은 기기들이 수초처럼 꽉 차 있다.
우리 연구실엔 여섯명의 스태프들이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유영하듯 조용히 움직인다. 언어는 있어도 소리는 없고 모든 대화내용은 기록과 프린트로 소통된다. 하루 생활에서 실험기구들과의 대화가 동료 간의 대화보다 오히려 많다.
마이크로 또는 나노라는 극소의 단위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실험은 순간순간 발생하는 상태 변화를 관찰하려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이 우리는 기계처럼 기계 앞에 앉아있을 때가 많다. 어떤 실험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므로 사람이 기계같이 보인다.
간혹 기구들이 빨간 등을 번쩍거리고 이상한 불협화음을 내는 긴박한 순간도 발생하는데 기기가 작동의 오류를 감지하고 자신을 제대로 바르게 다루어 주기를 바라는 신호이다. 인간의 실수를 용납지 않고 실험기구가 말을 한다. 실제로 용납해서도 안 된다. 연구결과가 허위 논문이나 과장으로 전락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 앞에서도 유혹의 최면에 빠질 만큼 허약하다.
많은 기구는 정밀 정확도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한다. 생명공학은 이런 기계의 물리적 기능을 도입하고 특별한 생체조직에서 채취한 세포를 배양하고 연구하여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규명하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한 의술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두뇌나 인체의 구석구석을 촬영하여 보여준다.
사람의 손이 할 수 없는 실험을 인간이 만든 기계가 대행한다. 체온도 감성도 없는 차가운 금속물체가 인간을 조종하고 복종케 한다. 웬만한 집보다 비싼 고성능 현미경 같은 첨단 실험기구를 사용할 때는 결함이 생기거나 작은 부품이 손상되는 경우 수리비가 막대하여 여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기계가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취급되는 모순을 종종 경험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간로봇을 혼동할 미래가 도래하고 있다.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게 수천의 감정을 수용하고 있는 그릇,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계는 언제쯤 나올 것인가. 퇴근시간, 랩코트를 벗고 종일 긴장된 일에서 풀려 나오면 출근 때와는 다르게 자유스런 상념에 빠지는 나를 발견 한다
사람의 변덕스런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 나에겐 난해한 시를 읽는 것처럼 어렵다. 시상이 명료하여 쉽게 읽혀지는 시가 있는가 하면 거듭 읽어봐도 이해가 안 되는 때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생화학실험 결과를 정확히 읽어내는 연구실 기계처럼 상대방의 진실한 마음을 읽어내는 기계가 발명될 미래, 우리에겐 난해한 시를 쉽게 읽어주고 그래서 시가 사랑받는 시대를, 인간과 과학, 문학과 과학이 융합을 이루는 신화 같은 시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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