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희 3월의 서신-귀뚜라미
2017.03.18 07:39
예술은 어떤 영감이나 천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갈고 닦는 노력이다. 영감이란 없다. 작업만이 있다. 예술작품이 어떻게 보이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잘 본질에의 근접을 하느냐고 믿었던 로댕은 그 순수 형태를 위해 끊임없는 탐구에 몰두하여 신앙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차가운 돌 속에 인간의 기쁨과 고뇌와 연민 사랑을 담아내려했지요.
지금 저는 시의 작업 역시 결국 본질을 찾아가는 도정임을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가령 지금 내가 슬프면 내 슬픔의 본질, 그 원인은 무언가, 그리고 그 본질의 뿌리를 캐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 어떤 문학성의 매개체의 도움을 받아야할 까, 내 슬픔의 옷은 무슨 색깔을 또 어떤 결의 옷을 입고 .....그러나 내 슬픔의 보자기에 안겨 오는 아기는 정작 그 최후의 순간 기적 같은 울음소리로 시간의 획을 가르며 이 땅에 탄생하는 것을.....
먼저 제 서신의 지체됨을 사과를 해야겠네요. 제 잘못으로 지난달부터 이 달을 걸쳐 제게 온 몸의 불편함, 그것을 제 소식을 기다리신다는 분들에게 알려 드려야겠어요.
이 달은 또 다른 시인의 시는 제쳐놓고 저의 졸시 <귀뚜라미>하나만 보냄을 사과드리며, 이 졸시에 무슨 해설이 필요하겠어요?
귀뚜라미
이 겨울, 아직도 겨울인 3월,
가을도 아닌 귀뚜라미 울음 앞세우고
빌딩 숲 어디, 수천 토네이도 같은
이상한 귀뚜라미-울-음-소-리,
지난 가을 붉게 타던 미루나무 가지에는
길 잃은 철새 한 마리 선지피 각혈을 하고,
눈 먼 시인의 자판기에는 백지와 먹지가 엉켜
아무 글자 나타나지 않네
지금 흰 언어들은 숨을 죽였네
눈치만 보는 쓸쓸함,
지난 해 푸른 5월 새들의 울음이 즐거웠던 것은
저들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거리를 둔 탓이었다고
그 때 저들 연초록 가슴에서 뿜어내는
푸르고 환한 소리,
그토록 아름다웠음을 그 땐 몰랐네
지금, 슬픔이 작은 돌 위에 내리 앉았네!
슬픔이 내리앉아 아직도 끝나지 않는
꿈을 꾸네,
또다시 5월이 오면
그 쪽과 이쪽의 미루나무 푸른 가지에도
새들은 즐거운 노래 부르고,
다시 가을이 오면 저들 귀뚜라미
푸릇 푸릇 참다운 곡조 하나씩 멀리
높이 높이 빛아, 솟아오르겠지......
4월은 부활의 생명의 빛과 함께 아름다운 순복의 생을 축복 받으시기를, 아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