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똥밭에 굴러도
2012.03.10 04:36

내가 널 언 땅에 묻지 않았듯이
너도 이제는 나를
시린 가슴에서 꺼내줘
가슴에 묻으면 에인다 해서
유리병에 꽃씨처럼 너를 담아
태평양을 건너왔잖아
아무리 남은 세월 덤으로 살다 간다지만
산천이 서너 번 뒤 바뀌는 동안
고향으로 머릴 두고 많이도 울었잖아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터널과도 같은 어둑한 방안을 전등불로 밝힐 때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하나 둘 물방울이 떨어질 때
편지함에 들어온 고지서도 반갑게 느껴질 때
빗방울이 후드득 창문을 두드릴 때
못 엇박아 아픈 손 움켜쥐고 벽보고 한숨 질 때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낯설어 보일 때
우두커니 서서 황홀한 저녁노을을 바라볼 때
너는 그저 천상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잖아
자신을 아끼기엔 너무 바쁜 세상이라서
그래서 널 저 푸른 바다에 띄워 보내주려는 거지
할미꽃 피어있는 곳을 지나가더라도
차마 기억이 울며불며 폭풍의 눈으로 떠밀려가더라도
절대로 뒤 돌아보지도 말아
잘 가 훠어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잖아
이제 난 괜찮아
아주 썩 괜찮아
-소리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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