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눈 열어

2012.05.19 03:47

이월란 조회 수:0


여보, 눈 열어


이월란(2012-4)


살아 있다는 것이 그저 죄스럽기만 한 이즘
깨어나고 싶지 않은 아침이 뜨면
이른 햇살에 적신 엄지와 검지가 눈꺼풀에 닿는다

“여보, 눈 열어”
힌두교도의 이마에 찍힌 점 같은 제3의 눈으로
당신이 나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막대그래프처럼 피어난 꽃들이 키를 재는
정원 너머의 세상은
유물보관함 같은 땅속으로 묻힐
위계질서만이 오늘도 투철하다

눈물을 펄펄 흘린다는 말에
흰 눈이 펄펄 내리고, 땀은 뻘뻘 흘리며
눈물은 철철 흘리는 것이라고
엄마의 혀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온달 같은 남편에게
눈을 흘기면서 가르쳐 주어도

“여보, 눈떠”
라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끝끝내 가르쳐주지 않는다
“여보, 눈 열어”
서툰 잔말로 두 눈이 열릴 때면
어둠 한 점 없는 환한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아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9 말하는 옷 이월란 2012.05.19 0
238 초보운전 이월란 2012.05.19 0
237 쇠독 이월란 2012.05.19 0
236 평생 이월란 2012.05.19 0
235 유혹 이월란 2012.05.19 0
234 제3국어 이월란 2012.05.19 0
233 추격자 이월란 2012.05.19 0
» 여보, 눈 열어 이월란 2012.05.19 0
231 변경 이월란 2012.05.19 0
230 단추 김학천 2012.05.19 0
229 더하기 문화 김학천 2012.05.19 0
228 세월이 가면/첫사랑 동아줄 2012.09.21 0
227 친구를 보내며 안경라 2012.09.21 0
226 아직도 널 기다려 안경라 2012.09.21 0
225 PC쓰레기 처리 안경라 2012.09.21 0
224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오연희 2012.09.23 0
223 속삭임 박영숙영 2012.09.23 0
222 사랑보다 먼저 박영숙영 2012.09.23 0
221 산타모니카의 노을 / 석정희 석정희 2012.07.23 0
220 도시 개발 동아줄 2012.07.2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