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 문화

2012.05.19 05:09

김학천 조회 수:0

  어렸을 때는 무조건 보름달이 좋았다. 둥글고 밝으니 보기에도 좋고 풍요함을 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은 초승달이 더 예쁘고 좋다. 아름다운 여인의 눈썹을 닮아 보는 마음을 설레게도 하지만 구태여 또 다른 이유를 붙이자면 보름달은 이제부터 기울기 시작하는 반면 초승달은 점점 커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침보다는 시작이 좋아서다. 또한 늘어가서 생기는 넉넉함은 받아들이는 열림이 되기도 때문이다.
  오래 살다보니 지금은 익숙하나 처음 이 나라에 발을 디뎌놓았을 때 아주 낯설었던 것 중 하나가 이들의 계산법 관습이었다. 처음 이민 오자마자 식품점에 가서 당장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골라 담았더니 계산기엔 52불 34전이 찍혀 나왔다. 나는 얼른 100불 짜리 한 장을 내 밀었다. 이는 내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거기를 빨리 빠져 나오고 싶어서였다.
  왜냐하면 소심한 내게 있어서 10불이나 5불, 1불 짜리 혹은 동전 등을 지갑에서 빨리 구별하여 찾아내느라 시간 끄는 것도 내 뒷사람들에게 미안한 것 같기도 해 얼른 지폐 한 장을 불쑥 내민 것이다. 그런 내게 계산원은 10불 짜리 넉 장을 들고 천천히 52불 34전 에서부터 셈하기 시작하여 페니까지 주며 100불을 맞추는 게 아닌가. 좀 당황하면서 가게를 나와 거스름돈을 맞추어 보니 받을 금액을 틀림없이 다 받은 것이다.
  내가 잠시 헷갈린 것은 나는 100에서 빼기 52.34를 해서 돌려 받을 것이 47.66으로 생각한 것이고 저쪽에서는 내가 산값에서부터 더하기 해나가 내가 내민 돈 끝을 맞춘 계산이었다. 이는 거스름의 사전적 의미가 ‘큰돈에서 받을 액수를 덜어내고 남는 것을 내어주는 돈’이라는 해석처럼 어렸을 때부터 거스름의 뺄셈이 다라고 여기고 살아온 내가 받은 첫 번째 충격이었다.
  차츰 살다보니 더하기로 자란 사람과 빼기에 더 머리가 굳은 이들의 사고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유리컵에 물이 반이 들어있을 때 더하기로 생각하는 사람은 ‘반만 더 넣으면 하나 가득 되는구나’ 라고 한다면 빼기로 생각하는 이는 ‘이제 반마저 없어지면 바닥이 나는구나’ 와 같다고 할까.
  더 재미있는 것은 물건을 사다 물건값을 잔돈까지 꼭 맞게 내면 영수증을 주면서 “퍼펙”하며 응수를 던지는 경우를 흔히 만난다. 이럴 때면 사는 이나 계산원이 함께 웃으며 “댕큐”라고 화답하기 일쑤다. ‘고맙습니다’나 ‘천만에요’가 그저 형식적인 언어라도 들어서 나쁘지 않다.
  이런 말씨가 보편화 된 사회는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존중하고 있다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져 나도 두 단어를 씀에 인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사회적 혹은 문화적 분위기는 이 나라의 독특한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긴다.
  아메리카 합중국이 의미하듯이 다민족들이 모여 이룬 나라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의가 이민자의 자손이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어 힘을 합(더하기)해 최대 강국으로 자리 매김한 것이기에 이들의 사고는 늘 받아드림에 열려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더하기는 자꾸만 늘어나기에 넉넉하다. 그 넉넉한 것을 여기저기 이런 저런 뜻으로 나눠줌으로 더 풍요한 나라로 커온 게 현재의 미국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나도 더하기 문화에 많이 익숙해 져 카드나 체크를 쓰지 않고 현금을 내야 할 때라도 처음처럼 급하게 큰돈을 선뜻 내는 일은 거의 없다. 지갑엔 링컨 얼굴이 새겨진 페니도 가지고 있으니까.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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