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2012.06.04 10:58

이영숙 조회 수:0



이상하다.  이곳 엘에이는 한국에 있는 것은 ‘연탄집게 빼고’ 다 있다.  그런데 연탄집게도 아닌 냉이를 찾을 수가 없다.  어느 분의 말이 엘에이는 겨울이 따뜻하여 냉이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것일까?  
  딸은 냉이 타령이 심하다.  미국 와서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일이다.  어릴 때, 여덟 살이 채 되기 전에 미국에 왔는데 그 전에 먹은 냉잇국이 늘 기억에 남아있었나 보다.  한국엘 두어 번 다녀왔지만 늘 방학을 맞아 가니 여름이 아니면 겨울이었다.  그러니 냉이를 맛볼 기회가 없었다.  
  아침에 씀바귀나물을 무쳐먹었다.  지인이 뜰에서 뜯은 것이라며 조금 주셨다.  새콤달콤하게 무쳤더니 봄 향이 진하게 우러나는 맛이었다.  쌉싸래한 맛 때문에 여기서 자란 딸이 잘 먹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맛나게 먹으며 좋아했다.  이것이 봄의 맛이라고 일러주었다.  냉이의 향긋한 맛, 달래의 상큼한 맛, 씀바귀의 쌉싸래한 맛.  한국의 봄맛을 이야기 했다.  
  씀바귀나물을 먹으며 문득 동요가 생각났다.  제목이 아마 “봄맞이 가자”였던 것 같다.
“동무들아 오느라 봄맞이 가자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아침을 먹다 말고 노래를 불렀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 동요를 모르는 딸에게 불러주고 싶었다.  그런 것들은 한국의 봄을 대표하는 나물들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다 생각하니 참, 요즘도 그런 노래를 부를까?  세월이 흘러 동요가 많이 바뀌었겠지?  아니, 세월이 흘러서라기보다 지금의 상황이 그 노래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요즘은 아이들이 너무 바쁜 시대이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과외 받으러 다니느라 시간을 쪼개며 지낸다는데 어찌 봄이라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다니면서 “달래, 냉이, 씀바귀”캘 시간이 있으랴.  상황에 맞지 않는 노래는 불려 지지도 않을 것이고 가르칠 의미도 없지 않을까?  궁금했다.  지금도 아이들은 그 동요를 부를까?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조카에게 페이스북으로 물어보았다.  요즘 아이들이 그 동요를 부르냐고.  참 희한하다.  아직도 초등학교 3학년음악교과서에 그 노래가 나온단다.  너무 상황에 맞지 않다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어떤 느낌을 가질까?  달래, 냉이 씀바귀를 알기나 할까?  봄이 온다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봄나물을 캐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딸에게 이야기 했다.  요즘 아이들이 공부하랴, 과외 하랴 바빠서 어디 봄나물 캐러갈 시간이 있기나 하겠니?  상황에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는구나.  내 말에 딸의 대답이 더 웃긴다.  “엄마, 바쁘지 않아도, 시간이 많아도 산으로 들로 봄나물 캐러 다니지 않아요.”  그렇겠지.  공부하다 조그마한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게임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있겠지.  그것이 아니어도 힘들게 산과 들로 다닐 생각을 할 아이들이 없을 듯하다.  
  문득, 요즘 아이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경쟁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  정서도 인간성도 일단 뒤로 물려놓고 싸워야하고, 이겨야하는 그 아이들.  어느 드라마에서 초등학교부터 고강도 교육이 시작되는 것을 봤다.  좋은 중학교 가기위함이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그래도 머리 싸매고 공부했다.  아니며 최소한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렇게 공부했다.  지금은 초등학생들은 좋은 중학교 가기 위해 머리 싸매야하고, 중학생은 고등학교를 위해, 고등학생이 되면 좋은 대학을 위해 싸워야 함은 필수이다.  어디 거기서 끝날까?  대학교에서는 취직을 위해 또한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것을.  평생 공부와 싸우며 엎치락뒤치락 하다 인생은 끝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미국에 온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물론 미국이라고 과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도 한국 못지않은 고액 과외가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만 하더라도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여 12년 동안 한 번도 학원이란 곳, 과외란 것을 해본 적 없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니.  미국에 온 큰 감사한 일중에 한부분이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가기로 했다.  딸은 또 냉잇국타령이다.  그동안처럼 이번에도 봄에 갈 수 없으니 딸이 원하는 냉잇국을 먹일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러나 엄마는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초봄 일찍 한국의 언니에게 전화했다.  냉이를 사서 보관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냉동을 시키던, 건조를 하던 관리했다 우리가 가면 먹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13년 만에 냉잇국을 먹게 될 딸의 모습이 벌써 눈에 아른거린다.  그 긴 시간 기다려온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