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

2012.06.25 15:29

이영숙 조회 수:0

푸르름이 눈부시다.  모처럼 방문한 6월의 한국이다.  삭막한 사막도시 엘에이에 살다 온 나에게는 가슴 벅찬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차창을 통해 내 눈에 펼쳐진 온 산과 들이 푸르름을 가득히 선사하고 있다.  모든 산은 나무를 가득히 안고 있다.  어디 한군데 흙을 볼 수 없다.  온통 푸른 나무들뿐이다.  짙푸른 그 색깔들은 그 어떠한 다른 색을 용납하지 않으려한다.  
  3, 4월이었으면 진달래꽃으로 산이 불타고 있었겠지.  붉게 물들인 산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이었으리라.  노랑과 빨강이 한국적 색깔이라 했던가.  온 산을 화려하게 수놓았을 진달래와 개나리의 그 찬란한 색깔들.  참 어여뻤으리라.  진달래도 개나리도 다 지고, 모든 색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잎이 무성한 푸름이 되어버렸다.  이 또한 아름다움이 아니던가.  꽃의 색이 곱듯 잎의 푸름도 그 못지않게 화사하고 눈부시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그냥 푸르다.  가까이서 본다면 가지가지이겠지.  키가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을 것이다.  넓게 펴진 모양도 있을 것이고, 위로 쭉 뻗은 모양의 나무도 있지 않을까.  잎의 모양도 그러하리라.  넓적한 잎, 침엽수의 뾰족한 잎, 자그마한 잎의 모양 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양들이 다 하나로 보인다.  연한 녹색도, 짙은 녹색도 함께할 것이겠지만 그냥 함께 화음을 이루어 모두 같은 톤으로 다가온다.  멀리 아득히 보이는 저 희뿌연 색은 아카시아 꽃일까?  아니다.  지금은 6월 중순이니 아카시아는 아닐 게다.  아, 밤꽃이구나.  저 깊은 산속에 맺은 밤은 누가, 언제 따갈까?  밤나무주인이 밤이 다 익으면 깊은 산속 무성한 나무숲을 헤치며 따러올까?  아니면 그냥 다람쥐를 비롯한 산짐승들의 양식이 되는 걸까?  궁금증이 일어난다.  산의 그 짙푸른 녹색에 맞추어 논에는 벼가 한창 자라고 있다.  그들도 산 못지않게 녹색을 자랑하며 뽐내고 있다.  눈을 어디로 두어도 다 푸른 산천이다.  아, 녹음이 짙은 계절에 내가 한국을 방문했구나.  지금 오기를 참 잘했다.
  ‘녹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때, 눈에 보이는 모든 전신주에는 방공포스터나 불조심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아무것도 붙지 않은 말간 전신주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다.  많은 포스터 중에 유난히 나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문구가 있었다.  “녹음기에 간첩침투를 주의하자”라는 거였다.  어린 나에게 녹음기라는 것은 그 무렵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그 ‘녹음기’뿐이었다.
  우리 사촌 오빠 중 두 명이 일본에 있었다.  그 중 큰오빠가 일본에서 사업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사촌오빠의 큰 성공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몇 년에 한번씩 한국을 방문할 때, 오빠의 아들보다 훨씬 어린 사촌동생인 나에게까지 무언가가 주어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한번은 일제 녹음기를 하나 사다주셨다.  라디오겸용이었다.  그 무렵 그것은 친구들에게 내놓고 자랑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정말 귀한 것이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이 있었다.  큰 노트를 앞에 펴 놓은 선생님은 큰 소리로 외쳤다.  “집이 자기 집인 사람 손들어.”  “전세를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은......?” “집에 자기 공부방이 따로 있는 사람 손들어.”  집에 자전거 있는 사람, 책상 있는 사람, 신문 구독하는 사람, 논, 밭 있는 사람, 소 있는 사람……. 등을 물으며 손을 들게 하고는 기록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하잘 것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때는 그 하잘 것 없는 것들마저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우리 집처럼.  그 많은 질문가운데 내가 손을 들 시간은 도대체 주어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키가 큰 나는 다른 때는 친구들보다 높다라니 앉아있었다.  그 시간만큼은 자꾸자꾸 줄어들어 큰 키가 다 어디로 가고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거의 책상에 붙을 만큼 되었다.  한껏 작아진 나에게 귀가 번쩍 뜨일 말이 들렸다.  “집에 라디오나 녹음기 있는 사람 손들어.”  순간 허리를 활짝 펴고, 손을 높이 들었다.  오른쪽 겨드랑이가 거의 찢어질 만큼 높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손들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런 귀하고도 귀한 ‘녹음기’가 간첩침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몹시 고민이 되었다.  나의 이 소중한 녹음기가 우리가 가장 싫어해야 하고 발견될 때는 꼭 신고해야하는 간첩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나의 이 녹음기가 간첩침투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아참, 선생님께서 간첩을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치실 때, ‘밤늦은 시간에 몰래 라디오를 듣는 사람’도 간첩일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였을까? 밤늦은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깊은 시름에 잠도 설쳤다.  
  이런저런 생각에 웃음이 얼굴에 번져있는 시간 버스는 목적지, 내 고향에 도착했다.  다시 눈을 들어 산과 들을 보았다.  6월, 완연한 녹음기다.  내가 아끼던 그 녹음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한국은 지금도 녹음기가 되면 간첩침투를 염려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