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 '돈' 감상
2017.05.05 00:56
돈
나에게 30원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 만진 것
쓸 필요도 없이 한 3.4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한 돈
-어린놈을 아귀라고 하지
그 아귀란 놈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집어갈 돈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
하여간 바쁨과 한가와 실의와 초조를 나하고 같이한 돈
바쁜 돈
아무도 정시正視하지 못한 돈 돈의 비밀이 여기 있다
김수영 시인은 비속어를 포함하여 시어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상어를 적극적으로 시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을 노래하거나 서정시를 쓰지 않고, 오히려 시 같지 않는 시를 쓰려고 하였으며 의도적으로 관념어나 산문적인 문장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서정시를 깨고 비시적인 요소를 시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어뿐이다.
돈을 표제로 한 이 시는 돈이 갑자기 생겨남에서 쓴 시다. 첫 시작은 심리적 정황에서 나온 묘사로서 생긴 돈을 가지고 있는 화자 자신의 상태를 썼다. 이런 이야기는 일시적 사실의 표현이므로 어떤 상상이나 구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좀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거나 의미화 했으면 사뭇 뜻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행과 둘째 행에는 대견하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나에게 30원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이 두 행은 화자가 일을 했든 공짜로 생겼든 일단 돈이 생겼다는 것이 몹시 대견한 것으로서 화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구체성의 진실이 좀 빈곤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이 시의 4행에서 “쓸 필요도 없이 한 3.4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 한 돈”은 그 돈으로 먹고 또 자기고 했다는 뜻이다. ”하여간 바쁨과 한가와 실의와 초조를 나하고 함께 한 돈“은 또한 화자가 그 돈으로 인하여 삶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뜻도 된다. 이 시는 그 내용이 어렵지 않아 비교적 쉽게는 읽히지만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배열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리듬이 결여되어 있어 읽는 즐거움이 없고 문장의 어색함도 문제지만 시어가 지니고 있는 함축적 의미가 독자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 때의 30원의 가치가 얼마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지금의 30만 원쯤 되지 않을까 싶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돈이 생기면 쓸 일이 더 생긴다. 돈이 나올 데가 있으면 돈이 더 먼저 알고 쓰려고 나선다는 말이 있다. 한 때 돈이 없을 땐 살 것도 어찌 그리 많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여유가 없으니까 모든 게 더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엔 백화점에 가면 전부가 다 갖고 싶은 물건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고 싶은 게 없다. 설사 어떤 물건이 수중에 없다하더라도 마음에서 이미 갖고 있는 거나 진배없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돈일 것이다. 그래서 참 치사하고 더러운 게 돈이다. 돈 앞에서 누구라도 꼼짝을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이라고 했다.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 한단 말이 있다.” 이 말은 돈이 있으면 돈이 바빠진다는 뜻이다. 아무도 정시하지 못하는 돈이지만, 작가는 돈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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