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장독대

2012.12.07 09:22

김수영 조회 수:65

어머니의 장독대 金秀映 유약을 발라 윤기가 반지르 흐르는 질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장독대는 어머님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다 장독대를 만들어야 햇빛이 잘 들어 된장, 고추장이 잘 숙성이 된다. 장독대에는, 된장과 고추장은 물론, 무우 장아찌, 오이 장아찌, 고추 장아찌, 메실 장아찌 등 밑반찬 장아찌들이가득 담겨있는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린시절 어머님이 메주콩을 큰 가마솥에 삶아 발 방앗간에서 빻아 목침처럼 메주를 주물러 만든 다음 짚으로 엮어 매어 천정에다 달아 놓았다. 겨우내 메주 뜨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도 맛있는 된장 먹을 생각에 꾹 참고 겨울을 보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된장, 고추장 담기는 겨울철 김장과 함께 우리나라 주부들이 해야 할 삼대 일거리로 일년에 큰 행사로 꼽히었다. 너무나 주부들의 손이 많이 가는 행사라 현대와서는 주부들이 직장생활하고 바쁘다 보니 식료품 가게에서 모든 것을 사먹게 된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정성스레 담그신 된장, 고추장 맛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맛이 떨어져도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사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도 결혼 한 후 한 십년동안은 만들어 놓은 메주를 사서 손수 된장을 담그고 , 고추장도 담그었다. 겨울 김치는 담아서 땅을 깊이 파 묻은 질항아리 속에 넣어 두고 봄까지 먹었고, 무우, 배추, 파 동침이도 땅 속에 묻어 둔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다가 봄 까지 먹곤 했다. 눈이 펄펄 내리는 설날, 맛있는 떡국을 끓여 살얼음이 낀 동침이를 깨고 무우, 배추를 끄집어 내어 썰어서 시원한 국물과 아작아작 씹어먹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시원하고 찬 동침이 국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국물을 계속 들이켰던 추억이 떠오른다. 연탄까스에 중독이 되었을 때도 동침이 국물 한사발이면 거뜬이 깨어났다. 추운 겨울날에도 온가족이 온돌 방에 앉아 겨울 포기김치를 죽죽 찢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밥에 얹어 떠 먹는 맛은 둘이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를정도로 별미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어디에서 그 옛 맛을 찾을 수 있을까. 냉장고가 없었던 그 시절, 항아리를 가마니로 싸서 땅 속에 묻어야 겨울에 김치가 얼지 않았다. 항아리 뚜껑도 짚으로 덮고 가마니로 덮어 두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 철에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운치는 별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 시장에 장보러 갈 수가 없어도 장독대만 바라보면 모든 걱정이 사르르 사라졌다. 쌀만 있으면 장독대에 먹걸이가 다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따뜻이 겨울을 날 수가 있어서 날씨는 추워도 마음은 부자처럼 늘 따뜻했다. 미국 이민울 온 후 뒷마당이 넓어 장독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자신이 없어 오늘날 까지 엄두를 못내고 슈퍼마켓에서 모든 것을 다 사 먹는다. 옛날 땅 속에 묻어둔 김치를 끄집어 내어 먹던 맛있는 김치를 이제는 먹을 수 없으니 그 옛날이 몹시 그립고 아쉽다. 친정 어머님이 살아 계신다면 분명히 그렇게 담아 주실 것이다. 어머니는 개성이 고향이시라 유명한 개성 보쌈김치를 얼머나 맛있게 담그시는지 겨울철만 되면 어머님 보쌈김치가 먹고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를 비롯 우리의 조상들은 된장, 고추장, 김장을 스스럼 없이 거뜬히 가족을 위해 해 내었다. 육이오 전쟁 직후 잘 먹지도 못할 때인데도 어디서 그 에너지가 솟구쳐서 주부들이 힘든 일을 해 내었는지 정말 장한 어머니들이었다. 정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요즈음은 김치를 담그면 풀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에 담는다. 질 항아리에 담는 김치 맛이 왜 더 맛이 있을까하고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질항아리는 진흙(황토)으로 만든다. 빨간 벽돌이나 빨간 기와도 모두 진흙으로 만든다. 나는 진흙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최근에야 알았다. 진흙은 태양 에너지의 저장고라 불리울 정도로 동, 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여 일명 살아있는 생명체라 불리기도 한단다. 또한 공기중의 비타민이라 할 수 있을정도로 음이온을 방출하여 산성화된 체질을 알카리성으로 바꾸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 준단다. 그래서 두통을 해소하고 치매 예방에 좋고 기억력 향상을 돕고 소화기능을 개선하며 당뇨 예방에도 좋고 피로회복에 좋고 불면증도 해소해 준단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대전 계족산에 황토길을 만들어 놓아 맨발로 황토길을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황토 성분이 직접 피부에 닿아 황토의 효소성분이 흡수되도록 한다고 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맨발로 황토 체험을 하고 간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렇듯 좋은 진흙으로 구운 질항아리에 김치나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그니 얼마나 우리몸에 좋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유리병이나 풀라시틱 통에 담은 김치보다 맛이 좋을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 수에 비해 된장, 고추장을 많이 담그셨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하루는 어머니께 여쭈었다. 적당히 양을 알맞게 담그시지 왜 많이 담그시냐고 말이다. 어머니는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입을 열어셨다. 전쟁 후 춘곤기에 보릿고개가 심해 하루 두 끼 혹은 한끼 먹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흘 굶으면 담 안 뛰어 넘는 사람 없다.’고 했듯이 된장, 고추장 도둑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혹시 도둑이 들어 된장, 고추장을 퍼 가도 우리 가족 먹을것을 고려해 많이 담근다고 하셨다. 살아 생전 늘 베풀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 겨울철만 닥아오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인색한 나자신을 돌아보며 어머니 닮기를 소원해 봅니다. 마당 한 모퉁이에 아담하게 장독대를 만들어 놓으시고 아침 저녁으로 물 행주로 질 항아리를 닦으시며 정성스레 장독대를 가꾸시던 어머니! 항상 윤이 번쩍이던 질 항아리 속에 먹을걸이가 항아리 마다 가득 담겨 있던 솜씨 큰 어머니. 늘 친구를 초대하시고 음식을 나누시던 어머니. 오늘 따라 유별나게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경북 풍산에 있는 부모님 선영에서 하얀 목련꽃과 노란 개나리 꽃이 만발한 나무옆에서 당신을 그리며 찍은 사진을 끄내어 봅니다. 너무나 꽃이 아름다워 어머니를 보듯 황홀해 찍은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저의 수필집에 이 귀한 사진을 올릴 것입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그 옛날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 위에 쏟아지던 별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눈빛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