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할머니

2013.04.12 03:08

이주희 조회 수:79


우리 할머니 / 이주희


이북 사투리에 스펀지 밟는 걸음걸이

바느질 엉성해도 음식을 잘하셨지

간 봐 달라 이집저집 청이 들어오면

손 씻고 수건 쓰며 건너가시던 할머니


촘촘한 참빗으로 단단히 쪽을 짓고

떨어진 머리카락 돌돌 말아 모으셨지

머리카락 장사 오면 얼른 들고 나가

엿 바꿔 우리 주고 웃음 짓던 할머니


장정 없어 하던 궁리, 뜨거운 물에 텀벙

집어넣은 닭을 꺼내 큰 그릇에 옮기셨지

툇마루에 올려놓고 슬슬 털 뽑다가

비척비척 달아난 닭에 놀라시던 할머니


매캐한 연기에 헛기침을 두어 번

고무래로 재를 긁어 삼태기에 담으셨지

출렁이는 거름통 위에 슬슬 뿌리시고

지게에 파묻혀 밭으로 가시던 할머니


할머니 무기는 부엌에 있는 부지깽이

내 말썽 멈추려 대문까지 쫓아 나오셨지

아궁이에 사그라진 단내 나는 잿빛 되어

콧등까지 알싸한, 가엾게 그리운 할머니

-(머리 깎는 채송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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