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사랑 고백
2013.06.26 18:24
40년 만의 사랑 고백 / 성백군
한 시간 반이면 되는 산책길
다이아몬드 헤드를 한 바퀴 도는 데 세 시간 걸렸다
길가 오푼마켓에서 곁눈질하고
오다가다 스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일일이 간섭하고
쉼터에서 잠시 머물면서 새들이랑 새우깡 나눠 먹고
이제는,
빨리 간다고 남은 시간을 요긴하게 쓸 나이도 아니어서
길바닥을 한담으로 낙서하며 쉬엄쉬엄 걷는다
슬며시 바닷가 부자동네로 잡아끄는 아내의 손
집들이 궁전이다. 시쳇말로 로망이다
“하, 그 집들 참 멋지다.” 하다가
그만 내 입의 발음이 헛나간 것을 알고 “머저리다.” 하는데도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아무 반응 없이
이 집 저 집 눈요기하기에 바쁘다
밉다, 저 집들
아무나 못 들어가게 담을 쳐 놓고 사는 사람들
아무나가 되어서 아내도 자식들도 아무나로 만들어버린
내가 더 밉고 미안해서
“그만 갑시다. 해 넘어가요.” 하는데, 아내는 꼼작 않는다.
살짝 뽀뽀하는데도
귀찮다고 역시 밀어내며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아내
느닷없이 달려들어 진하게 키스를 하였더니 그때야
놀라서 앞뒤 돌아볼 새도 없이 줄행랑을 친다.
40년 동안 못한 사랑 고백
“사랑합니다” 란 말 대신에
길거리에서 키스 한 번 진하게 하였더니
그 고백 멋지다며
서녘 해가 산마루 넘다가 멈춰 서서 돌아보고
고개 숙인 집들이 처마를 버쩍 들고
지나가던 바람이 40년 열기 식히느라
부채질하다 보니 세 시간이나 걸리더란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9839 | 강물 | 정용진 | 2013.06.27 | 43 |
| 9838 | 시를 압축 한다고 | 최상준 | 2013.06.27 | 56 |
| » | 40년 만의 사랑 고백 | 성백군 | 2013.06.26 | 57 |
| 9836 | 내비게이터 | 성백군 | 2013.06.26 | 55 |
| 9835 | 대나무 마디 | 성백군 | 2013.06.26 | 31 |
| 9834 | 별 | 윤혜석 | 2013.06.27 | 59 |
| 9833 | 오늘은 건너야 할 강 | 윤혜석 | 2013.06.27 | 46 |
| 9832 | 봉숭아 눈물 | 채영선 | 2013.06.26 | 50 |
| 9831 | (단편) 나비가 되어 (7, 마지막회) | 윤혜석 | 2013.06.23 | 40 |
| 9830 | (단편) 나비가 되어 (6) | 윤혜석 | 2013.06.23 | 29 |
| 9829 | (단편) 나비가 되어 (5) | 윤혜석 | 2013.06.23 | 49 |
| 9828 | (단편) 나비가 되어 (4) | 윤혜석 | 2013.06.23 | 49 |
| 9827 | (단편) 나비가 되어 (3) | 윤혜석 | 2013.06.23 | 54 |
| 9826 | (단편) 나비가 되어 (2) | 윤혜석 | 2013.06.23 | 53 |
| 9825 | 근친혼의 침묵 | 연규호 | 2013.06.22 | 47 |
| 9824 |
마리나 해변의 일몰
| 윤혜석 | 2013.06.21 | 23 |
| 9823 |
먼지 털어내기
| 윤혜석 | 2013.06.21 | 43 |
| 9822 | 소리 3 | 정국희 | 2013.06.21 | 63 |
| 9821 | 소리 2 | 정국희 | 2013.06.21 | 47 |
| 9820 | 돌부처 | 강민경 | 2013.06.21 | 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