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를 꿈꾸며/카피스트라노 디포에서
2013.12.09 04:11
지란지교를 꿈꾸며
金秀映
밤잠을 설쳤다. 처녀 때 신랑 될 총각과 맞선을 보려고 날짜를 잡아 놓은 전날 밤과 같이 설레었다. 참 오렌만에 여자 동문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사진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앰트랙 기차역이 우리 집에서 오 분 거리인데도 이민생활 중 세 번째로 기차를 타기 위해 찾아갔다. 한 번은 새크라멘토에 사는 딸네 집에 가느라 태평양 연안을 끼고 해변을 보면서 열여덟 시간이란 긴 여행을 했다. 두 번째는 여행사를 통해 허스트 캐슬을 보기 위해 기차 여행을 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기차여행이다. 미국에 삼십이 년을 살았는데도 세 번만 기차여행을 하다니 나는 나 자신에 놀랐다. 무엇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기차여행을 막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바쁜 미국생활에 늘 자가용 타고 다니는 것이 익숙해서 기차를 탈 엄두를 못내고 살아 온 것이다.
이 혜숙 동문은 샌디애고에서 나는 애너하임에서 출발하여 만나기로 한 장소가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였다. 이곳 역에 내리면 바로 역 앞에 고풍스런 고급 레스토랑이 있어서 음식도 맛있고 분위가 좋다고 이혜숙 동문이 추천을 했다. 이 식당은 옛날에 기차역이였다고 한다. 1895년에 세워진 역이었다. 지금은 승객이 많이 줄어서 식당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식당이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고 하니 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에 잔잔한 흥분마저 일었다.
시간보다 한시간 일찍가서 기다렸다. 이혜숙 동문 때문에 그렇게도 좋아하는 기차를 타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동문께 매우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기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 까지 가면서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육이오 전쟁 후 석탄을 때면서 검은 연기를 내 뿜으며 칙칙푹푹 소리를 내며 달리던 기차에 몸을 싣고 여행을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반세기가 훨씬 지났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 당시에는 기차가 허수룸 하고 좌석도 별로 편하지 않았고 얼마나 들거덕 거렸는지 모른다.
좌석도 편안하고 기차가 많이 흔들리지 않으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닥터 지바고의 영화가 생각났다. 시베리아의 설원위를 달리던 그 긴 기차를 잊을 수가 없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설경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영화 속에는 기차가 많이 등장한다. 특히 서부영화에는 기차가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하이 눈’은 잊을 수 없는 영화이다. ‘콰이강의 다리’도 다리위로 달리는 열차를 폭파 하기 위해 다리 밑에 폭약을 설치하는 아슬아슬한 장면 그리고 폭파되면서 도망가는 장면 등 잊을 수 없는 명화였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빨리 목적지까지 도착 할 수가 있었다. 역에 내리자 마자 몇 발자국 안가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이 고풍스러워 가을 날씨와 아주 잘 어울렸다. 화단에는 꽃들이 피어 있고 나무들은 단풍이 들어 운치를 자아냈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이혜숙 동문을 만나자 오랫동안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처럼 다정하게 느껴져서 어찌나 반가운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대학동문 카페에 올린 내 글을 읽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처음 만났지만 내가 십년이 넘는 선배란 것을 인식 못하고 친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나이 차를 실감하지 못한체 그동안 살아 온 얘기에 꽃을 피웠다.이혜숙 동문
은 경영학을 전공 호텔관광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평생 대학교수로 재직했지만 은퇴하고 미국에 사는 자녀들을 방문 중이다.
이혜숙 동문도 짝을 잃고 나도 짝을 잃어 서로가 일맥상통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기독교인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기뻤다. 이혜숙 동문은 외국에서 많이 살아 많은 글을 써서 자료료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쓰려면 소재가 풍부해야하는데 동문은 글을 쓸 수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동문에게 글을 갈고 다듬어 수필을 써 보라고 권유를 했다. 내가 쓴 수필 집 ‘늘 추억의 저편’을 한권 사인해서 증정했다.
초겨울이 다가와 쌀쌀한 날씨에도 훈훈한 사랑의 온정이 우리 두 사람을 따뜻하게 데펴 주었다.
무릎 수술 후 귀한 나들이가 동문이란 끈끈한 정을 더욱 단풍잎 처럼 붉게 물들여 황혼의 노울 처럼 곱기만 했다. 마중나온 동문을 뒤로 한채 손을 흔들며 기차는 나를 싣고, 꿈을 싣고 애너하임 기차역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혜숙 동문이여! 그대가 샛별처럼 문인으로 반짝일 그 때를 기대하면서 오늘의 상봉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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