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310063>무화과나무에 대한 연민
2014.11.01 17:17
무화과나무에 대한 연민 / 박봉진
무화과나무를 보면 답답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 “그러면 안 돼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남을 배려하면 도우고 싶고, 뭔가 주고 싶고, 때론 받는 낙도 있다. 그렇잖고 무슨 살 맛 나랴. 혹 눈에 안 띄어도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으면서 천방지축 뻗은 가지에다 넓적하고 껄끄러운 잎사귀를 무성하게 매단다. 이웃 나무들을 가로막고 일광을 독점하려는 속셈에서다. 뿌리는 또 어떻고. 땅속 깊숙이 내려 수분을 빨아올릴 일이지. 지면에서 얕은 땅 지평 아래로만 사통팔방 문어발처럼 뻗어 그 둘레를 선점한다.
못 말리는 그 근성. 원산지 지중해 지역이나, 중동의 사막지대 오아시스 근처라면 모를까. 캘리포니아 한 여름 뙤약볕에 그냥 두면 얼마 못가 잎사귀가 시들해져있다. 어찌 그냥 두랴. 그쯤이면 내 속도 좀 알아주련만. “대나무도 60년이면 꽃을 피운다는데, 어디 꽃 한 송이 피워보렴.” 그럴 순 없단다. 오곡백과와는 생판 달리 꽃을 바깥에 피우지 않는다. 제안으로만 꽃을 피워 불리고 키워 열매를 익힌단다. 그래. 벌, 나비가 발 부칠 데 없게 하고. 바람까지도 일없다 하는 독존을 자랑삼는다. 유전자를 들먹이고 조상 탓을 하니 딱하다.
악연도 인연이니 어쩌랴. 뜰이 좀 넓다고 샀던 집에 무화과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톱질자국이 남아있는 고목 둥치에다 가지는 뒤엉킨 쑥대머리였다. 전지를 하고 매년 다듬어 줘 지금은 큰 일산 수관(樹冠)으로 서있다. 울안이고 집 바깥장소 그 그늘에 나가 즐겨 머물고 있다. 나상으로 견뎌낼 겨울나기를 대비, 속가지를 솎고 도장 가지는 쳐 다듬어줘야 할 때다. 철지난 가마솥더위가 몰려와 민소매로 그 일을 했다. 조심했지만 잎사귀에 시달리고 잔가지들이 흘러낸 유독수액에 내 어깨와 팔뚝은 울긋불긋 흉한 문신에다 따가운 물집까지-.
믿는 도끼에 당한 꼴이다. 무화과나무는 뽕나무 과 종(種)이면서, 뽕나무와 닮은 것은 잎사귀 겉모양과 표피뿐이다. 그럼에도 과대포장처럼 무성한 잎사귀로 눈을 홀리다니. 이른 아침 성으로 들어오다 시장기가 들어 무화과나무를 본 그분. 잎사귀뿐임을 알은 심기가 상상된다. 그러나 내 생각 한쪽엔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 그분이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그 나무를 말려 죽인 것처럼 비쳤다. 이미 포커스를 잎사귀에 맞춘 일성임에도. 색맹의 속단. 다시 보다말고 어허, 무화과나무가 바로 나로구나! 때늦은 이 회개. 비우고 채울 일이 아득하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459 | 어느날 오후 | 차신재 | 2014.10.16 | 279 |
10458 | 황제 펭귄 | 정해정 | 2006.02.15 | 278 |
10457 | 설날, '부모님께 송금'하는 젊은이를 생각하며 | 정찬열 | 2006.02.05 | 278 |
10456 | 세월 | 홍인숙(그레이스) | 2004.08.04 | 278 |
10455 | 가든그로브에서 캐나다 록키까지(2) | 정찬열 | 2006.08.30 | 276 |
10454 | 당신의 첫사랑 | 박경숙 | 2005.06.08 | 276 |
10453 | 꽃씨 강강 수월래 | 김영교 | 2010.12.06 | 275 |
10452 | 멍청한 미국 샤핑몰 | 오연희 | 2004.08.09 | 273 |
10451 | 홍인숙 시의 시인적 갈증(渴症)과 파장(波長)에 대하여 / 이양우(鯉洋雨) | 홍인숙(그레이스) | 2004.07.30 | 268 |
10450 | 인생의 4계절 | 박경숙 | 2005.06.04 | 267 |
10449 | 고래 | 풀꽃 | 2004.07.25 | 267 |
10448 | 짜장면을 먹으며 | 오연희 | 2005.04.08 | 266 |
10447 | 가을이 지나가는 길 모퉁이에 서서 / 석정희 | 석정희 | 2006.01.10 | 265 |
10446 | 11월의 우요일 | 박경숙 | 2004.11.11 | 264 |
10445 |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날고 | 홍인숙(Grace) | 2004.08.17 | 264 |
10444 | 기도의 그림자 속으로 | 조만연.조옥동 | 2004.07.28 | 264 |
10443 | 그 거리의 '6월' | 박경숙 | 2005.06.19 | 263 |
10442 | 베고니아 꽃 | 곽상희 | 2007.09.08 | 261 |
10441 | -도종환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를 읽고- | 오연희 | 2006.08.09 | 261 |
10440 | 한정식과 디어헌터 | 서 량 | 2005.09.10 | 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