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디포에 갔다가 각양각색의 성탄 장식물이 전시되어 있는 부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반짝이는 각종 전등에 성탄 노래까지 흘러나와 발걸음이 살며시 출렁댔다. 성탄 장식물이 얼마나 다양하고 예쁜지. 전기 코드만 꽂으면 눈이 소복이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는, 하얀 성탄 트리의 깜찍한 불빛이 '나 좀 사가세요'라며 윙크하는 것 같았다.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솔가지를 꽂고 빼는 번거로움도 없는 간편한 트리, 내 머릿속은 벌써 하얀 성탄 트리가 놓여 산뜻해진 집안 분위기에 살포시 젖어들고 있었다.

그럼 집에 있는 케케묵은 성탄 트리는 어떡하지? 갑자기 짐 덩어리가 된 큰 상자가 떠올랐다. 연이어 성탄 트리를 꺼내 온가족이 함께 장식을 하던 때가 영상처럼 펼쳐졌다.

거라지 안쪽에 밀어 넣어 놓은 큰 상자를 낑낑대며 꺼내고, 거실 한쪽을 비워 고운 천으로 둥그렇게 바닥을 깐다. 그 위에 삼각 받침대와 중심대를 세워 접어놓은 솔가지를 하나하나 펴서 아래부터 순서대로 꽂아 나간다. 맨 꼭대기 금별을 올릴 때는 의자를 갖다놓고 제대로 꽂혔는지 봐 달라고 소리를 높이고, 트리를 뱅뱅 돌며 연결등을 두른 후 리본, 종, 방울, 산타, 천사 등 앙증스러운 오너먼트를 매다는 걸로 성탄 트리 장식의 거사는 완성된다.

성탄의 날이 가까워 오면 지인들에게 받은 카드와 선물 그리고 가족끼리 주고받을 선물 상자가 트리 아래 하나 둘 쌓여간다. 성탄 색상을 유난히 강조하는 알록달록한 선물 포장지에 눈길이 갈 때마다 입가에 웃음바람 번진다. 성탄 카드의 환상적인 그림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손 글씨를 읽으며 추억 속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새해에도 계속될 인연을 기쁘게 맞는다.

참으로 풍성했던 그 시절의 성탄 트리를 생각하면 절로 행복해져, 연말이 가까워져 올 때면 기분 좀 살려 볼까 하다가도 '에이 뭘'하고는 그만둔 지가 몇 해나 되었다. 간편하고 운치 있을 것 같은 하얀 트리에 잠시 마음이 술렁댔지만, 가족의 추억이 가득 담긴 멀쩡한 트리 놔두고 또 사는 것은 마음 편치 않은 일이라 눈에만 하얗게 담기로 했다.

나와서 보니 내 차를 주차해 놓은 곳이 해마다 홈디포 성탄 트리용 생 소나무를 파는 자리이다. 머잖아 천막이 들어설 것이고 천막 안은 방금 베어 온 싱싱한 상록수로 가득 찰 것이다. 나는 오며 가며 그 안을 기웃거릴 것이고, 나무를 사가는 사람들을 신선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꽃도 열매도 볼품없고 고운 단풍잎도 없는 온통 뾰족한 소나무에 장식을 해주는, 또 성탄의 계절이다. 가족이 함께 장식하는 성탄 트리는 생나무든 인조 나무든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 사랑과 웃음이 주원료인 그 향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짙어진다. "솔가지를 입체감 있게 쭉쭉 펴주고, 꼽는 순서를 잘 살펴야 해! 전등이 하나 나갔는데도 다른 건 다 멀쩡하네! 솔방울이, 아이고 너무 무거워 떨어졌어요! 친구한테 선물 받은 천사 달아도 돼요?" 올해는 진짜 마음 한번 내 볼까 생각하니까 그때의 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려온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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