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6 10:54

등라(藤蘿)

조회 수 23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등라(藤蘿)


                                                            이 월란



너도 나도 등마루 곧추 세워 하늘로 솟구치는 세상
해진 앞섶으로 젖은 길 닦으며 가는 날 있었겠다
살대 하나 없이 허공을 사는 올곧은 등뼈들이 서러워
가슴 무너지는 날도 지냈겠다
휠체어같은 버팀목에 앉아야만 하는 느물대는 가닥이 억울해
심장 부서지는 날도 살았겠다
감싸 안아야만 하는 수직의 장애를 만날 때까지
해토의 시린 땅을 배로 기는 버러지가 되어
백태 낀 혓바닥으로 행인들의 발자국을 핥았겠고
바닥에 길들여져 그늘을 주우며 살아왔겠다
누군가에게 기생해야만 자라는 목숨이 버거워
누추한 영혼의 집안으로 뒤엉키기도 했었고
함부로 허공 한 줌을 침범치 못해
기진한 듯 담장에 붙들린 행로에 만족하며
울끝까지, 맘끝까지 어루만지고서야
통회하고 자복하는 겸손의 성지를 쌓았으리
한번 맺은 인연 위에 잎새의 모티브를 따라
거친 살비듬 덮어가는 저 묵언수행을 당해냈으니
햇귀처럼 뻗치는 수맥을 다독여
무수한 허공의 길을 해독하려 들지도 않고
눈 잃어 점자책 더듬듯 가로막힌 담장을
경전처럼 읽어내려 왔으리
천혜의 절벽도 타고 오를 암벽 등반가가 되어
영험한 순종의 도(道)로 벽마다 초록 문신을 새기고
넌출 덮인 담장 사이를 걸어가는 귀밝은 사람들에게
무림의 숨소리 대신 전해주는 저 숲의 압축파일
                                  
                                                       2008-01-20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69 상처를 꿰매는 시인 박성춘 2007.12.14 359
1868 정의 - 상대성이런 박성춘 2007.12.17 191
1867 나는 벽에 누워 잠든다 JamesAhn 2007.12.23 346
1866 들국화 강민경 2007.12.29 188
1865 바람 성백군 2007.12.31 128
1864 한해가 옵니다 김사빈 2008.01.02 111
1863 해 바람 연 박성춘 2008.01.02 186
1862 방파제 성백군 2008.01.06 79
1861 카일루아 해변 강민경 2008.01.06 178
1860 올란드 고추 잠자리 김사빈 2008.01.21 414
1859 이해의 자리에 서 본다는 것은 김사빈 2008.01.23 282
1858 예수님은 외계인? 박성춘 2008.01.27 367
1857 봄은 오려나 유성룡 2008.02.08 152
1856 쓸쓸한 명절 연휴를 보내고 있답니다 이승하 2008.02.08 134
1855 지금 가장 추운 그곳에서 떨고 있는 그대여 이승하 2008.02.08 567
1854 잠 못 이룬 밤에 뒤적인 책들 이승하 2008.02.10 530
1853 연륜 김사빈 2008.02.10 166
1852 초월심리학과 정신이상 박성춘 2008.02.11 184
» 등라(藤蘿) 이월란 2008.02.16 239
1850 봄의 왈츠 김우영 2010.03.03 1433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