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6 10:54

등라(藤蘿)

조회 수 2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등라(藤蘿)


                                                            이 월란



너도 나도 등마루 곧추 세워 하늘로 솟구치는 세상
해진 앞섶으로 젖은 길 닦으며 가는 날 있었겠다
살대 하나 없이 허공을 사는 올곧은 등뼈들이 서러워
가슴 무너지는 날도 지냈겠다
휠체어같은 버팀목에 앉아야만 하는 느물대는 가닥이 억울해
심장 부서지는 날도 살았겠다
감싸 안아야만 하는 수직의 장애를 만날 때까지
해토의 시린 땅을 배로 기는 버러지가 되어
백태 낀 혓바닥으로 행인들의 발자국을 핥았겠고
바닥에 길들여져 그늘을 주우며 살아왔겠다
누군가에게 기생해야만 자라는 목숨이 버거워
누추한 영혼의 집안으로 뒤엉키기도 했었고
함부로 허공 한 줌을 침범치 못해
기진한 듯 담장에 붙들린 행로에 만족하며
울끝까지, 맘끝까지 어루만지고서야
통회하고 자복하는 겸손의 성지를 쌓았으리
한번 맺은 인연 위에 잎새의 모티브를 따라
거친 살비듬 덮어가는 저 묵언수행을 당해냈으니
햇귀처럼 뻗치는 수맥을 다독여
무수한 허공의 길을 해독하려 들지도 않고
눈 잃어 점자책 더듬듯 가로막힌 담장을
경전처럼 읽어내려 왔으리
천혜의 절벽도 타고 오를 암벽 등반가가 되어
영험한 순종의 도(道)로 벽마다 초록 문신을 새기고
넌출 덮인 담장 사이를 걸어가는 귀밝은 사람들에게
무림의 숨소리 대신 전해주는 저 숲의 압축파일
                                  
                                                       2008-01-20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28 운명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6.25 74
1427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25 114
1426 설산을 안고 앵두 빛 동심을 찾다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25 247
1425 두루미(鶴)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25 83
1424 바람, 나무, 덩굴나팔꽃의 삼각관계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25 117
1423 기회 작은나무 2019.06.22 185
1422 넝쿨 선인장/강민경 강민경 2019.06.18 165
1421 난해시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6.18 110
1420 봄바람이 찾아온 하와이 / 泌縡 김원각 泌縡 2019.06.15 116
1419 해 넘어간 자리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6.12 244
1418 올무와 구속/강민경 강민경 2019.06.11 182
1417 비치와 산(Diamond Head)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11 262
1416 광야에 핀 꽃 / 필제 김원각 泌縡 2019.06.07 144
1415 빛에도 사연이 강민경 2019.06.06 121
1414 사목(死木)에 돋는 싹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6.04 120
1413 당신과 약속한 장소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03 94
1412 철쇄로 만든 사진틀 안의 참새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5.31 210
1411 조개의 눈물 강민경 2019.05.30 147
1410 가는 봄이 하는 말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5.28 107
1409 나는 외출 중입니다/강민경 강민경 2019.05.23 85
Board Pagination Prev 1 ...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