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6 15:12

흔들리는 집

조회 수 1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흔들리는 집


                                                                   이 월란




언제부터였을까
노인성 백내장으로 한쪽으로만 보시던 내 아버지
버릇처럼 한쪽 손으로 회백색으로 흐려진 수정체를 가리시곤
뗏다 붙였다 뗏다 붙였다
<한쪽으론 정확한 거리측정이 역시 불가능해>
사물을 재어보시곤 하시던 내 아버지
저만치 슬픔이 아른거리며 다가올 때나
이만치 눈물겨움이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쪽 눈을 가렸다 뗏다 거리측정을 한다
명절이면 표준말을 쓰는 곱상한 남매를 데리고 손님처럼 묵고가던
내 아버지 쏙 빼닮은 배다른 오빠가 문득 고향처럼 보고파질 때
나도 한쪽 손을 올렸다 내렸다 삶의 초점을 다시 맞춘다
가까운 것들과 먼 것들이 늘 뒤섞여 있던 내 아버지의 시야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간다
알뜰히 물려주고 가신, 미워할 수 없는 불손한 유전자를 너머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 지령받은 사랑의 형질로
너무 멀어 그리워만지는 것들을
너무 가까워 안일해만지는 것들을
나도 한번씩 내 아버지의 거리측정법으로 파악해 보는 습관
아른아른 멀어진 걸어온 지난 길들은
생의 압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푸르스름한 눈동자 속에
흔들리는 집을 지어버린 나의 착시였을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07 저녁별 이월란 2008.03.25 161
1806 하다못해 박성춘 2008.03.25 167
1805 방귀의 화장실 박성춘 2008.03.25 365
1804 무서운 여자 이월란 2008.03.26 442
1803 열병 유성룡 2008.03.27 169
1802 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이시안 2008.03.27 252
1801 사랑의 진실 유성룡 2008.03.28 258
1800 갈등 강민경 2008.03.28 219
1799 노 생의 꿈(帝鄕) 유성룡 2008.03.29 371
1798 노란동산 봄동산 이 시안 2008.04.02 263
1797 창문가득 물오른 봄 이 시안 2008.04.02 361
1796 꽃불 성백군 2008.04.04 145
1795 겸손 성백군 2008.04.04 145
1794 시인을 위한 변명 황숙진 2008.04.05 238
1793 첫눈 (부제: 겨울 나그네) 강민경 2008.04.06 207
1792 푸른 언어 이월란 2008.04.08 227
1791 물 위에 뜬 잠 이월란 2008.04.09 299
1790 이별이 지나간다 이월란 2008.04.10 208
1789 파일, 전송 중 이월란 2008.04.11 245
1788 스페이스 펜 (Space Pen) 이월란 2008.04.13 193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