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8 14:52

페인트 칠하는 남자

조회 수 3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페인트 칠하는 남자


                                                            이 월란



축구공만한 페인트통에 바다를 퍼 왔다
삶의 햇살에 찌들어 갈라진 황토빛 지붕 위에 앉아
육신의 허리에 심어진 가훼들이 베어지고
청초했던 푸새들도 뽑히어져 황토가 뻘같이 드러나버린
그의 건토에 이제 도도히 바다를 심고 있다
기와지붕 텃밭에 이맛전의 주름살같은 고랑을 파고
한 이랑 한 이랑 뇌수의 꿈조각같은 씨앗을 뿌린다
노가리 한 감청색 홀씨는 바람을 먹고 자랄 것이다
파란 심줄이 돋아난 손목에 쥐어진 붓이 움직일 때마다
쏴아아 쏴아아 파도소리를 내고
사다리를 옮겨 놓을 때마다 철썩철썩 파도가 솟구친다
이마 위의 땀을 닦을 때마다 끼륵끼륵 바다갈매기가 날아가고
하얀 수말이 암벽에 부딪히듯 그의 60평생 뱃전을 두드린다
잠시 고개 든 시선은 정확한 나란히금으로 수평선을 그어
동색의 하늘을 정확히 갈라놓는다
옥개석 가에 둘러쳐진 비닐커버들은 흰포말되어 바람에 나부끼고
뱃전 너머에 총총히 심어진 바다는
가을 아침 햇살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저 작업이 끝나면
저 남자는 출렁이는 바다 위에 누워 타원형 널빤지를 타고
정년의 여생을 실어 파도타기를 할 것이다
새벽별들은 늙은 등대수가 된 그의 욱신대는 뼈마디마다 내려와
등대불되어 반짝여도 줄 것이다
아침이면 그는 수역으로 둘러싸인 백파의 바다에 뜬
별보다 먼 절해의 외딴섬이 되어 있을테니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08 이월란 2008.03.03 162
1807 날아다니는 길 이월란 2008.03.04 212
1806 바닷가 검은 바윗돌 강민경 2008.03.04 234
1805 병상언어 이월란 2008.03.05 123
1804 흔들리는 집 이월란 2008.03.06 205
1803 獨志家 유성룡 2008.03.08 144
1802 봄밤 이월란 2008.03.08 133
1801 울 안, 호박순이 성백군 2008.03.09 245
1800 Daylight Saving Time (DST) 이월란 2008.03.10 161
1799 꽃씨 이월란 2008.03.11 163
1798 노래 하는 달팽이 강민경 2008.03.11 307
1797 여든 여섯 해 이월란 2008.03.12 244
1796 가시내 이월란 2008.03.13 227
1795 바다를 보고 온 사람 이월란 2008.03.14 166
1794 장대비 이월란 2008.03.15 294
1793 별리동네 이월란 2008.03.16 115
1792 봄의 가십(gossip) 이월란 2008.03.17 163
» 페인트 칠하는 남자 이월란 2008.03.18 349
1790 망부석 이월란 2008.03.19 154
1789 목소리 이월란 2008.03.20 175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