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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하·이승하 형제의 글쓰기
                  

  임순만(국민일보 논설위원)



  문학평론가 이동하(서울시립대 교수), 시인 이승하 씨는 우애 깊은 형제다. 집안의 대소사나, 아주 이따금 동생이 형에게 책을 빌리러 가는 때를 제외하곤 만나는 적이 거의 없다지만 이들의 우애와 문학에 대한 성실성은 문단이 인정하는 바다.


  형 동하씨는 『아웃사이더의 역설』『신의 침묵에 대한 질문』 등 많은 평론집을 내면서 동년배의 평론가 중 가장 의욕적인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뒤질세라 동생 승하씨도 10권의 시집과 다수의 평론집을 냈다.


  거친 기준이긴 하지만 작품의 양으로 보아 동년배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모범적인 글쓰기에 대해 본인들은 "간단한 취미 하나 없어 그저 책을 읽거나 글을 썼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바쳐진 문학에 대한 열병과 심도 깊은 방황은 가벼워진 오늘의 문학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바가 있다.


  형 동하씨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유례없이 다시 국문학과에 편입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경북고 수재 소리를 듣던 그는 철학과 지망생이었으나 법대를 가라는 부모와 갈등이 심해져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달간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곡절도 겪는다.


  그러나 법대 입학 후 세인들이 동경하는 법조계에 끼어들기 위해 1년간 고시 준비를 해본 결과 세속의 지위는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국문학과로 편입했다. 철학은 '책상'과 '추상' 속에 갇혀 있으나 문학은 삶의 구체적 모습들이 스며들어 있고 철학적 문제의식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법관의 길을 마다하고 국문학 공부를 하겠다는 장남. 김천에서 초등학교 앞 문방구점 하루벌이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의 집안은 당연히 풍파가 일었고, 동생 승하는 절망의 어린 나날을 보냈다. 고등학교 입학 두 달 만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란 말로 시작되는 장문의 글을 써두고 가출을 시작, 10대 후반기에는 몇 차례의 자살기도, 대인공포증·신경쇠약증·신경성 위궤양……, 햇빛 한 줄기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다만 그 시절 문방구점 아래 지하실 방에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같은 음습한 소설들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훗날 문학을 찾아서 대학에 왔을 때 "문학은 자애(自愛)의 방법이 아니며 인간은 고통을 통해 근원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는 문단의 찬사 속에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시집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괴로운 체험이 많이 들어 있어 다시 펼쳐보고 싶지 않은 시집이라고 한다. 출간 후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부친으로부터 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읽으라는 호통을 들은 시집이기도 하다.



  가야 할 길은 또 얼마나 멀고 험할까
  돌아다보면 참 아득도 해라 눈꽃 핀
  세상, 사람들은 얼어붙어 정육점의 가축처럼
  (어린 시절, 정육점 앞을 지날 때는 눈길을 돌렸었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걸려 있었네
  20세기의 지상 곳곳, 대리전과 침략전과 내전이 끝난 뒤
  통곡하는 상복의 여인을, 미쳐버린 스물네 살의 처녀를
  너는 본 적이 있는가 네가 본 세상의 어둠은
  눈으로 덮여 있어 더 환하고 순결했을 것이네

  얼마를 더 가야 쉴 곳이 나올까
  밑창 다 떨어진 구두와 지폐 몇 장
  젖은 가방을 베고 누워 운 적이 있었네
  (그 가방 속에는 『이별 없는 세대』가 있었고)
  젊은 탕아들이여 귀가하지 말라
  너희들이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고 외치고 싶던 그날
  눈 쌓인 길 위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
  왜 너는 더없이 순수한 죽음에 관한 것들을 들려주었었나?
  왜 너는 나한테 관련맺음의 아름다움을 들려주었었나?
  
  나도 언젠가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수십 번도 더 내가 살해하고 용서했던
  부모와 형제(=가족=가축?)가 준 상처는
  (그 상처는, 다른 누가 주는 상처보다 깊으리)
  이 우주의 역사와 더불어 불멸할 거라고 저주하며
  집을 떠났었네, 네 짧은 소설마다 눈 내리고 눈은 꽃피워
  겨울이 오면 늘 다시 읽고 싶은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날, 길 위에서 너는 나한테 손 내밀며 말했었네
  가장 가까운 것, 힘없이 늙어가는 것들은 다 사랑하라고.
                  ―「길 위에서의 약속」(『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전문  



  동하씨의 평론은 법학을 전공한 사실을 주지시키듯 문학작품과 사회와의 관계를 보는 눈이 깊다. 고도의 관념이 아로새기는 난해한 문장이 아니라 일반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문체로 요지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의 비평의 뿌리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세로축과 종교적 초월주의의 가로축으로 구축되어 있다. 상호 대립하는 이 두 힘에서 탐구와 모색을 지속하는 에너지를 얻는다. 평론 『신의 침묵에 대한 질문』은 신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최고의 평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 일본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침묵』, 서기원의 『조석백자 마리아상』 등 국내외의 대표작을 제임스 벤틀리, 한스 큉, 아하스 페르츠, 본 회퍼 등의 신학이론과 비교해 깊이있게 분석하면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 기독교를 비판하는 작품의 출현은 나쁠 것이 없다. 기독교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비판을 통해 더욱 힘을 얻으면서 살아나가는 존재다.  


  ―임순만 씨는 현재 국민일보 논설위원. 이 글은『임순만 기자의 문학 이야기』(세계사, 1994)에서 가져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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