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1 20:09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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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뜰 앞에 우리 식구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들여 다 보았습니다.
자주 안 들여다보는 날에는 슬퍼 보이고 저녁나절쯤 되면 가볍게 눈을 흘기는 것 같습니다. 바쁘다고 붕붕거리고 차를 몰고 나가면 뜰 내 식구들이 손을 흔드는 것도 못 봅니다.
한나절 지나서 돌아오면 얼굴을 팍 숙이고 쳐다 도 안봅니다
미안해, 허겁지겁, 물보라를 피어내며 목욕을 시키면 그래도 팍 숙인 얼굴을 안 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지요
그래도 미안해하면서 물을 주고 나면 새장에 나리 우리가 울어 댑니다
나도 돌아 봐, 나 배 고팠어. 합니다. 나리, 우리가 그렇게 해도 안 돌아 보면 물통과 밥통에 앉아서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칭 얼 대는 우리 태호 같아 피식 웃고는 그래, 미안해, 배고팠지, 목말랐지, 물통에 물을 나무 그늘이 지도록 부어주고, 밥통에 모이를 한 가득 모이를 넣어 줍니다. 그런 다음 나중에 쳐다보게 되는 어항의 물고기 입니다
나무 잎 속에 숨었다가도 어항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입니다. 저들은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어항 속을 질주 합니다, 그러다가도 눈 맞춤을 합니다. 입은 오물오물 눈은 껌벅껌벅 하며 연신 나래 짓을 하지요. 밥을 주면 폴짝 튀어 올라와 밥을 물고 물속 들어가 오물거리고 먹습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어느새 코스모스 도라지 백일홍 장미가 활짝 이파리를 벌리고 마음껏 파란 물감을 들어 내 놓지요, 집을 잠시 비우려 해도 이런 내 식구들이 얼마나 기다릴까 젖 먹는 자식 떼어 놓고 나온 것 같아 마음 조립니다.
더러 일 년에 한 번씩 동부에 사는 아이들 보러 갈 적에는 주인 집 홀아비 대빗 에게 단단히 설명을 하고 일러 줍니다, 그러면 잘 알았노라고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들은 엄마를 그리듯 그리다 지친 모습입니다.
작년에는 미나리가 폭삭 말랐습니다, 코스모스가 하얗게 빛이 바래 저 있습니다, 앞뜰이 휑하니 팍 죽어 있는 식구들, 좀 더 일찍 올걸 하게 됩니다. 사랑 할 수 있고, 사랑 줄 수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땅속을 파면 지렁이가 팔딱거리는 것을 보아도 생명에 전율이 옵니다, 사랑해 미안해합니다. 꽃피면 벌이 붕붕거리는 것만 보아도, 짝짓기 하던 메뚜기, 매미를 생각합니다. 몇 십 년 만에 반딧불을 보고 흥분하여 쫓아 다녔지요.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자격 없다 소리 들어가면서, 내 주장을 하였던가 싶기도 합니다.
글만 쓰면 되지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하는 마음이 옵니다. 사랑만 하고 가도 모자란 삶인데, 이기려고 내 주장이 옳다고 하였나 하는 생각이 옵니다.
어제는 마켓에서 배추와 무를 사가지고 약방에 앉아 있는 윤 모매님을 보았습니다. 전날 내게 혹독하게 힐난 하던 생각이 잠깐 스치지만, 그건 잠시고 10년을 같이한 정이 아련하여 피어나서 인사를 하고, 배추와 무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짚고, 가신다는 것을 억지로 차에 태워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니, 체증이 내려 간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살만한 세상인 것이지요. 이렇게 살아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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