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2 17:30

아름다운 엽서

조회 수 218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름다운 엽서 / 성백군


간밤에 비바람 몰아치더니
알리와이 운하(運河)에 낙엽들이 모여앉아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손을 담근 미루나무 잎, 발만 담근 맹고나무 잎,
아예 물속에 들어가 멱감는 야자나무 잎도 있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오면
세상 떠야 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명줄 끊이고 보니 대책 없다고
노란 무늬, 빨간 무늬, 아직 혈기 덜뜰어진 초록 무늬
저마다 낙관인양 제 몸에 삶의 흔적 새기고
잔물결 빌어 이력서를 쓰고 있다

뉴욕에서 왔다는 K,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는 M,
시카고 Mr, 엘에이 Mrs, Mr, Miss, Mrs-----,
한국에서 왔다는 박씨도 있다
직업도 가지가지이고 사연도 많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무성하다
쇼핑카에 가득 찬 헌옷 가지들, 하소연 들어주기도 지겹다는 듯
간혹, 벌떡 일어나 불어오는 바람에 무료함을 씻어내고
종일 지켜보던 태양은 가장 뜨거울 때 메스를 들이댄다
와이키키 해변 벤치 위에는 수술을 기다리는 너부러진 노숙자들로 가득하다

가끔, 먹어보라고 입을 크게 벌려 물도 가져다주고 빵도 쥐어주면서
상처 자리 들어내고는 외면하는 주민, 더러는
비행기표를 사주면서 고향으로 입원시키자는 주 정부
그러고도 치료해줄 생각은 않으니 이제는
그들의 이력서가 알라와이 운하(運河)에서부터 와이키키 해변까지
흘러 와 차곡차곡 쌓인다. 문득
세상 물정 모르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저들을 건져내어 책갈피에 끼워두고 오래 다독이다 보면
좋은 세상 소식 전하는 아름다운 엽서가 되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29 그만큼만 작은나무 2019.05.15 216
928 잃어버린 밤하늘 / 성백군 하늘호수 2022.05.25 216
927 시조 찔레 향기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2.13 216
926 마음자리 / 성백군 2 하늘호수 2022.02.15 216
925 가을 빗방울 / 성백군 하늘호수 2023.11.28 216
924 성백군 2006.03.14 217
923 꽃샘바람 성백군 2006.07.19 217
922 바람난 가뭄 성백군 2013.10.11 217
921 보름달이 되고 싶어요 강민경 2013.11.17 217
920 대숲 위 하늘을 보며 2 강민경 2019.07.24 217
919 그거면 되는데 1 유진왕 2021.07.20 217
918 12 월 강민경 2005.12.10 218
917 그대와 나 손영주 2007.04.24 218
916 희망 전상서 2 김화영 2007.09.24 218
915 걸어다니는 옷장 이월란 2008.05.05 218
914 혼자 남은날의 오후 강민경 2008.10.12 218
» 아름다운 엽서 성백군 2012.11.12 218
912 억세게 빡신 새 성백군 2013.11.21 218
911 알러지 박성춘 2015.05.14 218
910 환생 강민경 2015.11.21 218
Board Pagination Prev 1 ...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