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 16:17

억세게 빡신 새

조회 수 20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억세게 빡신 새 / 성백군
                                                                                              

산기슭 개울가 잡초들 틈에 끼어
고개 숙인 억새꽃 본다
봄 여름이 산자락 지날 때는 거기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이제, 가을이라
제 모습 드러내며 삶을 묵상하는 것일까?
실바람에도 꺼덕꺼덕 생각이 깊다

잘살아보겠다고
바람 따라 흐르다가 물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무턱대고 주저앉은 삶
그 자리가 살 곳인지 죽을 곳인지도 모르면서
잡초들 속에 섞여 잡초 잡아먹는 잡것이 되어
억세게 살다 보니 억새라고 불어더란다.
조상님들의 유전자가 붙여준 이름, 억세게 빡신 새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지
맨몸으로 이민 와서 삼십 년 넘게, 계단도 없는 삶
잠시도 쉴 새 없이 언덕을 기어오르다 보니,
자식들 결혼하여 분가하고 손주들 몇 안아보고
이제는 홀가분한 삶, 어느새 훌쩍 커서
머리에 은빛 면류관 서넛 쓰고 주위를 굽어보는데
아직은, 키만 컸지 보면 볼수록 허허로운 세상 벌판
아무도 없고 나만 있다.

억새다
산기슭 돌아가는 저녁 해거름,
가을 노을에 붉게 젖어 하얗게 식어가는 저
백발 머리에 손을 대본다.
드디어 홀씨를 하늘로 날려 보내노니
너 혼자가 아니라고
내년 이맘때는 여럿 생길 것이고
내명년 후에는 억새밭이 될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 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87 어버이날 아침의 산문과 시 이승하 2008.05.07 311
686 시조 어제는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11.27 89
685 어젯밤 단비 쏟아져 서 량 2005.07.28 263
684 어쨌든 봄날은 간다 / 성백군 하늘호수 2020.05.26 169
» 억세게 빡신 새 성백군 2013.11.21 206
682 시조 언 강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2.26 127
681 언덕 위에 두 나무 강민경 2015.01.25 280
680 언어의 그림 그리기와 시의 생동성에 대하여 (1) 박영호 2008.11.12 560
679 언어의 그림 그릭기와 시의 생동성에 대하여 (2) 박영호 2008.11.12 626
678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새는 곽상희 2007.08.31 506
677 얹혀살기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8.17 170
676 얼굴 주름살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4.20 106
675 얼룩의 소리 강민경 2014.11.10 302
674 얼룩의 초상(肖像) 성백군 2014.09.11 195
673 얼씨구 / 임영준 뉴요커 2006.02.17 221
672 엄마 마음 강민경 2018.06.08 102
671 엄마는 양파 강민경 2019.11.06 303
670 수필 엄마의 ‘웬수' son,yongsang 2015.07.05 333
669 엉덩이 뾰두라지 난다는데 1 file 유진왕 2021.07.18 281
668 엉뚱한 가족 강민경 2014.11.16 213
Board Pagination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