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날선 빛 / 성백군
어둠 속
유령 같은 것이
가시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다
그냥 지나치기가 의뭉스러워 다가가 보았더니
흰 비닐봉지가 바람을 잔뜩 먹음고 있다
뉘 집 울을 넘어
탈출한 걸까, 쫓겨난 걸까
한때는 주부 손에 이끌리어
장바닥을 휩쓸고 다니면서 영광을 누렸을 텐데
그 영화도 잠시, 짐을 다 비우고 할 일이 없어지니
사랑도 떠나 가드라며
사십 대 실직자처럼 버럭버럭 고함을 지른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교과서 말만 믿고 큰 소리치며 뛰쳐나온 비닐봉지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품 안에 안겼던 애처로운 눈망울들이
옆구리를 가시처럼 파고들어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조금씩 조금씩 제 몸을 비틀며
주변을 살핀다
이제는
자기가 흔해빠진 비닐봉지임을 알았는지
제 몸 찢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펄럭거린다
날선 흰빛이 어둠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진다
634 - 10112014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929 | 시 | 마음자리 / 성백군 2 | 하늘호수 | 2022.02.15 | 216 |
928 | 시 | 가을 빗방울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3.11.28 | 216 |
927 | 하소연 | 유성룡 | 2005.11.27 | 217 | |
926 | 싹 | 성백군 | 2006.03.14 | 217 | |
925 | 꽃샘바람 | 성백군 | 2006.07.19 | 217 | |
924 | 바람난 가뭄 | 성백군 | 2013.10.11 | 217 | |
923 | 시 | 보름달이 되고 싶어요 | 강민경 | 2013.11.17 | 217 |
922 | 시 | 대숲 위 하늘을 보며 2 | 강민경 | 2019.07.24 | 217 |
921 | 시 | 그거면 되는데 1 | 유진왕 | 2021.07.20 | 217 |
920 | 12 월 | 강민경 | 2005.12.10 | 218 | |
919 | 그대와 나 | 손영주 | 2007.04.24 | 218 | |
918 | 혼자 남은날의 오후 | 강민경 | 2008.10.12 | 218 | |
917 | 아름다운 엽서 | 성백군 | 2012.11.12 | 218 | |
916 | 시 | 억세게 빡신 새 | 성백군 | 2013.11.21 | 218 |
915 | 시 | 그늘의 탈출 | 강민경 | 2014.10.04 | 218 |
914 | 시 | 알러지 | 박성춘 | 2015.05.14 | 218 |
913 | 시 | 환생 | 강민경 | 2015.11.21 | 218 |
912 | 시조 | 풀잎이 되어 / 천숙녀 | 독도시인 | 2021.06.06 | 218 |
911 | 시 | 숨쉬는 값-고현혜(Tanya Ko) | 오연희 | 2016.07.08 | 218 |
910 | 시 | 가을 퇴고 / 성백군 | 하늘호수 | 2018.10.19 | 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