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에 길을 묻다 / 성백군
집, 안과 밖
세상 이쪽과 저쪽 사이, 회색 벽돌담 위를
봄 여름 지나 가을까지 줄곧
초록으로 단풍으로 기어 오르던 담쟁이가
지난밤 된서리 맞고 비밀을 드러냈습니다
낙엽 한 잎 두 잎 땅 위에 쌓일 때는
억척스럽다는 담쟁이도 별수 없다 여겼더니
지금은 겨울 한 철 일손을 놓고 잠시 쉴 때라며
그동안 일군 성과를 담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무도 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담장 위에 길이 났습니다
담을 타고 다니며 사방으로 얽힌 까만 줄기는
소통을 원하는 억눌린 사람들의 호소처럼 힘이 있습니다
삶을 찾아 이동하는 개미들의 행렬입니다
선구자처럼
한 생애 목숨 다해
회색 공터 위에 길을 터 놓았으니
이제는 가서 깃발만 꽂으면 된다고
발밑 수북한 낙엽들이
내 발길을 툭툭 치며 힘을 보탭니다
643 - 12052014
시
2014.12.30 08:56
담쟁이에 길을 묻다
조회 수 277 추천 수 0 댓글 0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07 | 시 | 비와 외로움 | 강민경 | 2018.12.22 | 270 |
606 | 인연이란 | 김사빈 | 2012.03.04 | 272 | |
605 | 시 | 지는 꽃잎들이 | 강민경 | 2016.03.26 | 272 |
604 | 신아(新芽)퇴고 | 유성룡 | 2006.03.03 | 273 | |
603 | 겨울 바람과 가랑비 | 강민경 | 2006.01.13 | 275 | |
602 | 시 | 가을의 승화(昇華) | 강민경 | 2013.11.02 | 275 |
601 | 나 팔 꽃 | 천일칠 | 2004.12.30 | 276 | |
600 | 시 | 물의 식욕 | 성백군 | 2013.11.03 | 276 |
599 | 봄 볕 | 천일칠 | 2005.01.31 | 277 | |
598 | 날지못한 새는 울지도 못한다 | 강민경 | 2008.10.12 | 277 | |
597 | 일 분 전 새벽 세시 | 박성춘 | 2009.01.24 | 277 | |
596 | 수필 | 감사 조건 | savinakim | 2013.12.25 | 277 |
» | 시 | 담쟁이에 길을 묻다 | 성백군 | 2014.12.30 | 277 |
594 | 수필 | 세상의 반(半)이 ‘수그리’고 산다? | son,yongsang | 2016.02.14 | 277 |
593 | 시 | 얌체 기도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3.09.12 | 277 |
592 | 펩씨와 도토리 | 김사빈 | 2005.10.18 | 278 | |
591 | 헬로윈 (Halloween) | 박성춘 | 2011.11.02 | 278 | |
590 | 선잠 깬 날씨 | 강민경 | 2013.02.13 | 278 | |
589 | 수필 | Here Comes South Korea / 달리기 수필 | 박영숙영 | 2016.04.29 | 278 |
588 | 시 | 그 살과 피 | 채영선 | 2017.10.10 | 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