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집에서 - 길버트 한
2004.11.14 14:52
해장국집에서
평생,
가을 들판보다 더 누런 외투 입고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소를 본다
볏단이 작두 날을 받으며 여물이 될 때
"게으른 사람은 죽어 소된다"
소가죽 땀흘리던 주름진 할아버지,
생애 가득 곡간에 여물들 쌓아두셨다
어젯밤,
날 찾아 온 한 마리 소
기억의 비 쏟아지는 들판 거닐다
웃돌게 자란 푸념의 잡초를 밟는다
술병들 사이 빈 잔 꾹꾹 채우며
"한형, 시골 가 농사나 지었으면 좋겠어"
파삭 삭은 얼굴 나를 앞에 두고있다
술잔에 어리는 오래된 야망 굳어져
구겨 넣듯 창자의 벽 넘어가면
그렁그렁한 눈에 새벽 비 쏟아지겠다
우거지 세상을 살다 응고된 혈액
숭숭 구멍난 혈관을 통과하는 의식
덜 깬 취기가 선지처럼 부서진다
"김형, 열심히 선지 먹고 소되자고"
소 된 할아버지 들판에 서 계시고
싱싱한 풀밭 같은 아침을 열어
팔짱끼고 걷는 두 사람의 네다리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7 | 공감담요 / 김학천 | 관리자_미문이 | 2012.03.14 | 114 |
166 | 12월-나는 여기 화석으로 피어서 | 미주문협관리자 | 2016.11.30 | 113 |
165 | 11월-몸살 | 미주문협관리자 | 2016.11.02 | 113 |
164 | 안서영-선인장 | 미주문협 | 2017.05.25 | 111 |
163 | 나의 시 - 정용진 | 미문이 | 2005.07.04 | 111 |
162 | 식물원(植物園)에서 / 이용애 | 미문이 | 2009.03.16 | 110 |
161 | 억새꽃 / 구자애 | 미문이 | 2008.07.16 | 110 |
160 | 이선자-푹신푹신 엄마 | 미주문협 | 2018.04.13 | 109 |
159 | 사각지대 / 백선영 | 관리자_미문이 | 2012.04.16 | 109 |
158 | 다른 색깔의 아픔들 / 노기제 | 미문이 | 2008.11.03 | 109 |
157 | 유승희-낙관 | 미주문협 | 2019.09.03 | 108 |
156 | 김현정-행복한 나무 | 미주문협 | 2017.01.30 | 108 |
155 | 떠나는 날을 위하여 / 기영주 | 미문이 | 2008.08.10 | 108 |
154 | 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 관리자_미문이 | 2012.01.03 | 107 |
153 | 만남 / 최익철 | 관리자_미문이 | 2011.12.19 | 107 |
152 | 콜럼비아강에 흐르는 한강의 숨결 / 강성재 | 관리자_미문이 | 2012.01.09 | 106 |
151 | 강언덕-빈 바다가 불타고 있다 | 미주문협관리자 | 2016.04.02 | 105 |
150 | 바다를 보는데/ 강민경 | 미주문협 웹도우미 | 2014.06.05 | 105 |
149 | 그 사흘 뒤 / 석정희 | 관리자_미문이 | 2012.05.01 | 105 |
148 | 사과나무 / 안경라 | 미문이 | 2008.12.22 | 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