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 / 이주희
2009.03.30 10:44
덮여있는 책속의 글씨처럼
벌집에 갇혀 꿈쩍도 않고 있었어요.
줄어드는 꿀 때문에
너도나도 토요일 창문을 꼭꼭 닫아놓았죠.
허름한 봄볕은 화단에 내려와 멀미를 하였지만
물가는 내릴 줄 모르고 팔팔 살아 널을 뛰던데요.
임진강변에 사시는 시어른이 오셨어요.
몸값이 다락같이 높던 9 ~ 10월도 아닌
참게 한 두릅을 내려놓으며
속 찌꺼기 다 토하게 간장 끓여 부었다가
아범밥상에 올려봐라 하시고는
밭일이 바쁘다며 굽은 허리 펴지도 못하고 가셨죠.
내가 간장게장 담글 줄 모르는 건 그렇다 치고
쩍쩍 벌리는 집게손이 무서워
베란다에 내어놓고 하룻밤을 지냈어요.
2층 여자 1층 여자
네가 물을 잘못 버려 그렇다며 하수도 싸움이 났네요.
아래윗집 남자들이 제 여자 역성들러 팔 걷어붙이며 나오고
마른버짐 아이도 뒤따라 나와 합세를 했어요.
에구머니나!
물 내림 통을 비집고 나온 게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개나리꽃 밑으로 게거품을 흘리며 부리나케 달아나고 있어요.
가지마다 황금요령을 꿰어달고 사방으로 흔들고 있는 개나리꽃보다
모여든 구경꾼 입이 더 환하네요.
왁자지껄 쑥이 돋아나고
아지랑이가 진저리치고 있는 곳으로
냉이를 캐러 가야겠어요.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7 | 작품게재에 대하여 | 미문이 | 2009.06.22 | 862 |
166 | 팔색조 / 최문항 | 미문이 | 2009.06.22 | 278 |
165 | 사랑, 그 황홀한 유혹 / 지희선 | 미문이 | 2009.06.15 | 469 |
164 | 봄 두른 샛터 마을 / 조옥동 | 미문이 | 2009.06.08 | 330 |
163 | 개똥벌레의 여행 / 정해정 | 미문이 | 2009.06.01 | 483 |
162 | Sedona에서 / 정용진 | 미문이 | 2009.05.26 | 202 |
161 | 성모의 밤을 맞이하여 / 정문선 | 미문이 | 2009.05.18 | 313 |
160 | 문병/장효정 | 미문이 | 2009.05.05 | 324 |
159 | 자목련, 자목련 / 장태숙 | 미문이 | 2009.04.27 | 187 |
158 | 낙엽 하나 바람을 이고 / 장정자 | 미문이 | 2009.04.21 | 137 |
157 | 명상시조 3편 / 임혜신 | 미문이 | 2009.04.13 | 156 |
156 | 카스트라토 / 임영록 | 미문이 | 2009.04.07 | 65 |
» | 춘곤증 / 이주희 | 미문이 | 2009.03.30 | 200 |
154 | 모래산 / 이용우 | 미문이 | 2009.03.23 | 370 |
153 | 식물원(植物園)에서 / 이용애 | 미문이 | 2009.03.16 | 110 |
152 | 태양열 로봇 / 이영숙 | 미문이 | 2009.03.09 | 147 |
151 | 극장에서 / 이성열 | 미문이 | 2009.03.02 | 64 |
150 | 낙엽 / 이기윤 | 미문이 | 2009.02.23 | 104 |
149 | 악수 / 윤석훈 | 미문이 | 2009.02.16 | 89 |
148 | 종이별 / 윤금숙 | 미문이 | 2009.02.10 | 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