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담요 / 김학천
2012.03.14 08:14
찰스 슐츠가 1950년에 불과 7개의 일간지에 연재를 시작한 것이 그가 사망하던 2000년에는 무려 2400개의 신문으로 늘어난 만화가 있다. 스누피로 유명한 '피너츠'이다.
이 만화의 등장인물 중의 하나인 '라이너스'는 누이 루시에게서 괴롭힘을 당하고 찰리 브라운의 누이동생인 셸리로부터는 원치않는 사랑을 받는다. 그는 어린 아이인데도 삶을 넓게 볼 줄 아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철학자로 친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성서를 인용하거나 과학자같은 발언을 하기도 하는 반면 핼로윈의 호박대왕을 신봉하는 엉뚱함도 있다.
그런 라이너스에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항상 담요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것이다. 일종의 집착으로 그렇게 해야만 뭔가 불안함이 없어지고 편안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담요를 '안심담요'라고 부른다. 프로이트식에 의하면 지적으로는 성장했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아직 구순기에 머물러있는 미성숙아인 셈이다.
그런 라이너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의 우리 모습이 바로 그를 닮았음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뭔가 꼭 지니고 있거나 곁에 두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대상이 하나 씩은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는데 요새는 아마도 스마트폰이 그 중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소통의 주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차적 용도 외에도 모든 생활 정보를 얻거나 오락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 온 세상과도 연결되는 덕분에 잠시도 손에서 떨어져서는 못사니 당연히 오늘날 우리의 안심담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과연 이런 안심담요가 정말로 우리를 안심시켜 주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일는지?
사람들은 생활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계속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낸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그런 상품의 하나가 되고 결국엔 그 부속품으로 되어 간다. 그것은 더욱 더 나은 우리 삶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 기술이 목적으로 변질되어 가면서 사람이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속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도 밥만 같이 먹을 뿐 각자의 시선들은 스마트폰에 열중해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와 접촉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소통을 위한 첨단기기가 오히려 소통부재의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소통의 도구를 손에 든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틈 바로 이 단절이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디 그것 뿐인가. 타인의 전화번호는 물론 자신의 전화번호 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전화기를 잃는 순간엔 그야말로 난감한 처지에 빠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이 경이로운 기기 속에 세계를 저장하고는 모든 게 다 '내 손 안에 있소이다!'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전원이라도 나가고 스위치라도 켜지 못하는 언플러그 상태가 되면 사람들은 금세 불안해지고 패닉 상태에 이르며 고독에 빠진다. 기기에 의존한 모든 것은 결코 진정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앞으로 우리의 진정한 휴가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첨단기기로부터 언플러그 되는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해서 언플러그가 바로 우리 삶의 새로운 해방운동이라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미주중앙일보 3-1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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