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수필집 상재
2006.03.12 08:42
전자수필집 상재(上梓)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홈페이지엔 신학기 개강과 함께 그동안 겨울잠을 자던 회원들의 신작수필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다. 김학 교수님은 제자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에 신이 나시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많은 글들을 다 읽으시고 첨삭해주시느라 밤잠도 설치실 것 같아 걱정된다. 덩달아 나도 바빠졌다. 회원들의 신작수필을 한 편씩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기도하고 나의 습작에 커다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매일 3편 이상 수필을 읽으라는 교수님의 숙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니 일석삼조(一石三鳥)가 아닌가.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 커피를 마시면서 밤새 올라온 E-mail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회사를 한 번 돌아본 뒤엔 내가 운영하는 '정씨네 카페'에 직접 쓴 신작수필과 좋은 글들을 올린다. 그리고 고등학교홈페이지 등 가입한 사이트에 글도 올리면서 돌아본다. 회사업무를 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행촌수필문학회 홈페이지에 들러 새로 올라온 회원들의 신작수필을 읽기도 하고 한글2002 창을 열어놓고 독수리타법으로 습작품을 써보면서 하루를 보내곤 한다. 모든 회사업무는 물론이고 각종 정보 및 글들의 읽기와 쓰기가 컴퓨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지가 오래 되었다. 종이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되레 어색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든 정보는 백과사전이 아닌 인터넷을 통하여 얻으면 되고, 음악과 영화, 심지어 시와 소설 감상까지도 모두 컴퓨터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수필을 배우기 시작하여 습작을 20여 편 쓰고 나면 등단을 하고 6~70편을 넘게 쓰면 수필집을 내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고 들었다. 개인 수필집을 상재(上梓;글자를 판목에 새기는 일, 또는 책을 출판하는 일)하는 일은 얼마나 신나고 보람찬 일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 수필집을 남겨서 자손 대대로 자신의 글과 이름을 남긴다는 건 정말 뜻 있는 일이려니 싶다. 나도 등단을 한 뒤엔 교수님으로부터 수필집을 내라는 권유 아닌 압력을 받고 있다. 물론 수필집을 내기엔 충분한 글을 썼고 수필집을 내면 나로선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하지만 수필집을 내는데 드는 경비도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쓴 습작들을 살펴보면 단 한 편도 활자화하기엔 너무나 수준미달로 느껴진다.
고등학교 문예부 때의 일이었다. 매년 연말이면 교지를 만드느라고 바빴었다. 그때만 해도 수동 활판조판을 했었다. 조판공은 활자상자 앞에 서서 조판막대·배수자·핀셋을 가지고 조판작업을 했었다. 먼저 조판막대의 니(knee)를 잠그고 납 띠를 조판막대의 안쪽 날에 놓아 나중에 손잡이로 사용한다. 조판막대를 한쪽 손으로 잡고 다른 쪽 손으로 활자상자에서 필요한 활자를 골라 조판막대에 차례로 나란히 놓는다. 공목(空木:조판 때 활자나 행 사이에 끼워 넣는 나무나 납 조각)이 필요하면 사용하고 한 줄이 완성되면 손잡이로 들어 게라(galley:원고대로 짜놓은 활자판을 담아두는 목판)에 배열했었다. 조판공들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숙달된 손놀림에 감탄하곤 했었다. 200자원고지에 쓴 글들이 활자화되어서 책으로 나오면 내가 쓴 시들이 유명한 시인들의 시들과 같아 보이는 황홀감에 빠졌었다. 활자가 부린 마술에 놀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워드프로세서와 프린트를 통하여 인쇄를 할 수 있으니 그때처럼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지난주엔 시간이 있어서 그동안 써왔던 습작들을 정리 해봤다. 124편이나 되어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한글2002를 사용하여 글을 쓰기도 하고 보관도 한다. 그동안 쓴 글을 내 컴퓨터에 ‘수필’이라는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 놓았다. 목차를 만들고 습작을 쓴 순서대로 정리를 하다가 욕심이 생겼다. 얼마 전에 원광대학교 서예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합동논문집을 CD로 만들어 논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정부에서도 조선왕조실록 등 중요문서를 검색하기편리하고 영구히 보관할 수 있는 CD를 이용한 전자책(컴퓨터나 개인휴대단말기(PDA) 등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학 도서관이 전자책의 주요 고객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전자책을 선택하는 독자가 부쩍 늘고 있다. 그래 나도 CD를 이용하여 수필집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왕이면 내가 촬영했던 사진(컴퓨터에 파일로 보관해두었던 사진은 극히 적다.)도 올리면 좋겠지. 작품 하나에 사진 하나씩을 붙이고 모든 작품을 통일성 있게 손을 보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작수필 124편과 목차 그리고 기타 3편 등 총 341쪽으로 이루어지고 127매의 사진이 실린 전자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내 프로필사진을 이용하여 CD커버를 만들고 ‘수필가 정현창 전자 수필집’이라는 타이틀도 넣으니 제법 그럴싸한 전자수필집이 되었다. 옛날 옛적에 선비들은 일일이 직접 쓴 문집을 만들고 제본을 하여 몇 권의 필사본 문집을 만든 것이 지금에 와선 아주 귀중한 보물이 되지 않던가. 오늘 내가 만든 전자 수필집이 비록 보잘것없고, 10여 개밖에 복사하지 않았지만 먼 훗날 귀중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항상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하지만, 다음주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받아보시고 뭐라고 평가해주실 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2006. 3. 12.)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홈페이지엔 신학기 개강과 함께 그동안 겨울잠을 자던 회원들의 신작수필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다. 김학 교수님은 제자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에 신이 나시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많은 글들을 다 읽으시고 첨삭해주시느라 밤잠도 설치실 것 같아 걱정된다. 덩달아 나도 바빠졌다. 회원들의 신작수필을 한 편씩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기도하고 나의 습작에 커다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매일 3편 이상 수필을 읽으라는 교수님의 숙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니 일석삼조(一石三鳥)가 아닌가.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 커피를 마시면서 밤새 올라온 E-mail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회사를 한 번 돌아본 뒤엔 내가 운영하는 '정씨네 카페'에 직접 쓴 신작수필과 좋은 글들을 올린다. 그리고 고등학교홈페이지 등 가입한 사이트에 글도 올리면서 돌아본다. 회사업무를 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행촌수필문학회 홈페이지에 들러 새로 올라온 회원들의 신작수필을 읽기도 하고 한글2002 창을 열어놓고 독수리타법으로 습작품을 써보면서 하루를 보내곤 한다. 모든 회사업무는 물론이고 각종 정보 및 글들의 읽기와 쓰기가 컴퓨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지가 오래 되었다. 종이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되레 어색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든 정보는 백과사전이 아닌 인터넷을 통하여 얻으면 되고, 음악과 영화, 심지어 시와 소설 감상까지도 모두 컴퓨터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수필을 배우기 시작하여 습작을 20여 편 쓰고 나면 등단을 하고 6~70편을 넘게 쓰면 수필집을 내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고 들었다. 개인 수필집을 상재(上梓;글자를 판목에 새기는 일, 또는 책을 출판하는 일)하는 일은 얼마나 신나고 보람찬 일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 수필집을 남겨서 자손 대대로 자신의 글과 이름을 남긴다는 건 정말 뜻 있는 일이려니 싶다. 나도 등단을 한 뒤엔 교수님으로부터 수필집을 내라는 권유 아닌 압력을 받고 있다. 물론 수필집을 내기엔 충분한 글을 썼고 수필집을 내면 나로선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하지만 수필집을 내는데 드는 경비도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쓴 습작들을 살펴보면 단 한 편도 활자화하기엔 너무나 수준미달로 느껴진다.
고등학교 문예부 때의 일이었다. 매년 연말이면 교지를 만드느라고 바빴었다. 그때만 해도 수동 활판조판을 했었다. 조판공은 활자상자 앞에 서서 조판막대·배수자·핀셋을 가지고 조판작업을 했었다. 먼저 조판막대의 니(knee)를 잠그고 납 띠를 조판막대의 안쪽 날에 놓아 나중에 손잡이로 사용한다. 조판막대를 한쪽 손으로 잡고 다른 쪽 손으로 활자상자에서 필요한 활자를 골라 조판막대에 차례로 나란히 놓는다. 공목(空木:조판 때 활자나 행 사이에 끼워 넣는 나무나 납 조각)이 필요하면 사용하고 한 줄이 완성되면 손잡이로 들어 게라(galley:원고대로 짜놓은 활자판을 담아두는 목판)에 배열했었다. 조판공들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숙달된 손놀림에 감탄하곤 했었다. 200자원고지에 쓴 글들이 활자화되어서 책으로 나오면 내가 쓴 시들이 유명한 시인들의 시들과 같아 보이는 황홀감에 빠졌었다. 활자가 부린 마술에 놀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워드프로세서와 프린트를 통하여 인쇄를 할 수 있으니 그때처럼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지난주엔 시간이 있어서 그동안 써왔던 습작들을 정리 해봤다. 124편이나 되어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한글2002를 사용하여 글을 쓰기도 하고 보관도 한다. 그동안 쓴 글을 내 컴퓨터에 ‘수필’이라는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 놓았다. 목차를 만들고 습작을 쓴 순서대로 정리를 하다가 욕심이 생겼다. 얼마 전에 원광대학교 서예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합동논문집을 CD로 만들어 논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정부에서도 조선왕조실록 등 중요문서를 검색하기편리하고 영구히 보관할 수 있는 CD를 이용한 전자책(컴퓨터나 개인휴대단말기(PDA) 등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학 도서관이 전자책의 주요 고객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전자책을 선택하는 독자가 부쩍 늘고 있다. 그래 나도 CD를 이용하여 수필집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왕이면 내가 촬영했던 사진(컴퓨터에 파일로 보관해두었던 사진은 극히 적다.)도 올리면 좋겠지. 작품 하나에 사진 하나씩을 붙이고 모든 작품을 통일성 있게 손을 보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작수필 124편과 목차 그리고 기타 3편 등 총 341쪽으로 이루어지고 127매의 사진이 실린 전자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내 프로필사진을 이용하여 CD커버를 만들고 ‘수필가 정현창 전자 수필집’이라는 타이틀도 넣으니 제법 그럴싸한 전자수필집이 되었다. 옛날 옛적에 선비들은 일일이 직접 쓴 문집을 만들고 제본을 하여 몇 권의 필사본 문집을 만든 것이 지금에 와선 아주 귀중한 보물이 되지 않던가. 오늘 내가 만든 전자 수필집이 비록 보잘것없고, 10여 개밖에 복사하지 않았지만 먼 훗날 귀중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항상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하지만, 다음주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받아보시고 뭐라고 평가해주실 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2006.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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