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수필집 제목찾기

2006.03.23 18:34

정현창 조회 수:311 추천:59

전자수필집 제목 찾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니 다락방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키가 작았던 나로선 너무 높아 의자를 놓고야 겨우 올라갈 수 있는 벽장입니다. 하지만 나는 멋으로 다락방이라고 불렀습니다. 10촉 짜리 꼬마전구가 달랑거리고 천장이 너무 낮아서 꼬마인 나조차도 똑바로 설 수 없었으며, 먼지투성이인데다 창문 하나 없이 갑갑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린 왕자의 별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편안한 왕국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내가 아꼈던 보물 상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헌 공책을 찢어 만든 딱지와 구슬, 그리고 고장난 장난감 몇 개가 들어있는 낡은 상자였습니다. 하지만 ‘열려라 참깨!’하면 문이 열리는 동굴 안의 40인의 도적이 소유했던 보물 상자 못지 않게 귀중한 상자였습니다. 나는 이 낡은 상자를 ‘알리바바 보물 상자’라고 불렀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수필을 배우면서 열심히 수필을 썼더니 습작품이 무려 130편이나 되었습니다. 종이 책으로 출판한다면 두 권이나 될 분량이었습니다. 등단한 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보관해두었던 습작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CD에 복사하여 그럴듯하게 '수필가 정현창 전자 수필집'이라는 표지까지 만들어 김 학 교수님께 드렸습니다. CD를 받아든 교수님은 전자수필집 제목을 붙여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목을 생각해 보았으나 막막했습니다. 비록 수작업으로 만든 전자수필집이지만 최초의 내 수필집에 의미 있고 멋진 제목을 붙이고 싶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다 먼저 수필집을 상재한 회원들의 제목을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유영희 님의 남편에 대한 사랑을 담은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한 장병선 님의 ‘짧은 만남 긴 이별’이 있었습니다.  또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생각하는 김정길 님의 ‘어머니의 가슴앓이’도 있고, 고향의 휴식공간을 이야기한 양용모 님의 ‘짐바탱이’도 있었습니다.


몇 권의 수필집 제목에서 각자 특별한 의미를 담은 제목을 골랐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한 수필집 속에 수록된 수필 중에서 한 편의 수필제목을 선택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도 130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려고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내 습작들 중에는 ‘울트라마라톤’등 운동을 하다가 느낀 글들, ‘누드사진’등 오래 전 취미생활 이야기, ‘눈물 젖은 김밥’등 과거사 이야기와 ‘소녀와 비둘기’등 일상생활에서 겪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일기를 쓰듯 어느 한 분야가 아닌 보고 느낀 모든 일상들이 소재였습니다. 정말 다양한 제목들 중에 단 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좀 특이한‘누드사진’이나‘알몸 노출 죄’등도 생각해 보았고,‘울트라마라톤’이나 ‘죽은 발톱을 위한 조사’도 생각해 보았으나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눈물 젖은 김밥’이나 ‘어머니, 나의 어머니’등 가족이야기나 ‘개구리 위령제’나 ‘숟가락 방랑기’등 재미있는 제목을 떠올렸으나 그것도 조금 부족했습니다. 한참이나 모든 제목을 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환청 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형! 천천히 가!"하며 힘없이 외치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죽은 아우의 목소리였습니다.

  망각이라는 것은 조물주가 사람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지만 사랑하는 아우를 까맣게 잊고 사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 스스로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아우는 미술을 전공했고 보이스카우트 대장이어서 항상 내 곁에서 나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 주었습니다.  회사의 모든 행사기획 및 진행은 물론이고, 회사를 꾸미는 자질구레한 일까지 모든 일들을 도와주었던 만능 도우미였습니다. 아우가 있었으면 내 수필집을 편집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꼭 도움이 필요해서 내가 아우를 생각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우가 지금도 항상 내 곁에 있어서 이렇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환한 미소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해 가을 'MBC여성시대 편지 쇼'에 출품했던 편지글이 있었습니다. 비록 입상은 못했지만 잘 써지고 감동적인 사연이라고 방송을 탔던 작품입니다.‘우표 없이 부친 편지’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몇 년 전 하늘나라로 간 아우에게 쓴 나의 애절한 편지입니다. 아마 하늘나라에서 아우도 그 방송을 들었을 겁니다. 드디어 내 전자수필집의 제목을 찾았습니다.‘우표 없이 부친 편지’, 나는 그 제목을 내 전자수필집 CD표지에 커다랗게 인쇄했습니다. 이승을 떠난 아우가 보고싶고 그리워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2006.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