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때문에
2006.03.24 23:31
그분 때문에
조윤수(행촌수필문학회)
딱 두 달만에 좌판을 두드려본다. 이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순전히 그분의 메일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1월 31일 전주를 떠나서 2월 16일 까지 나는 국내에 있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수련 명상캠프가 열리는 일본 규슈의 아름다운 리조트타운에 있었기 때문이다.
3월 3일에사 메일을 점검했다. 일월의 마지막날 들어온 메일부터 시작해서 2월 동안 그분의 메일이 열 통이나 되었다. 3월 오늘까지 들어온 메일이 또 열 통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컴 앞에 앉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분의 열화와 같은 메일에 대한 최소한의 반응이라도 표현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물론 그분의 메일 공세를 받는 것은 비단 나 뿐이 아니란 것은 다 잘 안다. 만일 어떤 한 사람이 그리도 내게만 메일을 보내온다면 나도 그에게만 빠지지 않을까? 그렇게 성의를 다해서 메일을 보내주신다는 것은 이 첨단의 인터넷이 비서 노릇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열정이 없으면 어찌 그 일을 해내시겠는가. 그분의 수필사랑이 아니라면 어찌 하시겠는가. 수필은 그분의 인생 전부요 수필은 그분 자체인 때문이다. 한 번 회원이 되어 그의 메일 주소록에 오르게 되면 그의 수필사랑의 한 부분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의 메일은 회원들의 신작(新作)에서부터 국내외의 각가지 정보가 다 들어 있다. 따로 내가 찾지 않고도 작가들에게 필요한 정보란 정보는 다 보내주신다.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모두 수필가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보내온 메일 중에는 관광정보를 비롯해서 '세계칠대불가사의' '조선시대화가들의 춘화', 좋은 영상과 각종 음악 등 기이한 것도 많다. 60년대를 회상할 수 있는 옛날 풍속도의 사진들은 내가 걸어온 흔적들이기에 내 족적을 보는 것 같아 나의 앨범 같았다. 사실 나는 여자이긴 하지만 그분과는 나이로는 동갑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대사를 같이 겪어왔다. 여자와 남자 차이가 있어 관심 분야가 다를 뿐이었다. 같은 세대를 살았어도 그분은 내 아버지 세대분 같은 느낌이 많아서 옛날 선비 같기도 하다. 서로 살아온 삶의 배경이 달라서 뒤늦게 만났을 뿐이다.
그분을 알게된 그때도 그랬다. 지금처럼 인생의 한 막을 내리고 조용히 집안 일만 하는 한적함을 누리며 누적된 피로를 풀고 있을 때였다. 같이 했던 지구방위대모임의 회원들과도 갈림길이 달라져서 은퇴를 한 셈이었다. 자연히 TV를 자주 보게되었다. 가끔 우리집 양반으로부터 TV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어느날 TV 화면 밑에 방송아카데미가 있다는 자막이 떴다. 바로, '응, 저기 가 보자.' 다짐했다. 집에서 TV를 보더라도 모니터를 잘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매일 KBS 전주방송총국 강당에 다녔다. 정원에 배롱나무 꽃이 아직 화사하던 때였으니 8월 중순이었던가 싶다. 그리고 마지막날 어떤 키 작은 분이(무대가 아래이고 관중석은 높았기 때문) 무대 한 쪽에서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반이 개설된다고 알렸다. 바로 그분이 수필창작반 교수이면서 그때는 퇴임을 2년 앞둔 KBS 전주방송총국의 편성부장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말을 잘 들은 것은 나뿐이었지 않을까? 나는 또 그랬다. '응, 거기 가보자'
그것이 2001년 9월 첫 수필창작반에 들어가게 된 계기였다. 그런데 한 학기 공부를 하고 보니 대부분 작가 지망생 같기도 하고 이미 기초는 닦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문학이란 글자는 가까이 있었으나 난 꼭 작가가 된다거나 글을 쓰는 일을 꿈꾸거나 동경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골돌히 머리를 쓰는 일보다 글 속의 생활을 실천하는 일이 더 빨랐다. 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학의 모든 부분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세상에 다시 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 5년은 공부를 해야 기초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할 일이 많아졌다. 인터넷을 하지 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학기를 쉬는 사이 인터넷을 배웠다. 인터넷을 배우게 된 것도 순전히 그분의 알림 때문이었다. 나의 메일주소가 생긴 후 제일 먼저 그분께 메일을 띄웠다. 그것이 처음 쓰게된 수필 습작이 되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반친구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렇게 나는 수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평생교육원수필창작반에서 공부하며 쓰면서 뒤늦은 작가대열에 서게 된 것은 정말 그분이 이끌어주셨기 때문이다. 행운인지 불운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다시 들게 된 책가방은 무겁기만 했다. 공부해볼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되면서 머리에 수필의 구도가 그려져도 쓰기란 힘들었다. 오랜 세월 문장 수업을 해온 기라성 같은 작가들로 이루어지는 문학동네란 내가 같이 어울릴 마당은 아니란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5년 동안 기초를 닦은 다음에 등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미리 짐을 지게된 꼴이었다. 지난 5년이란 세월은 흔적 없는 세월이 된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삶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산꼭대기에 닿아야 한다는 목표와는 또 다른 것이다. 산정상에 닿아야 한다는 것이 목표라 할지라도 그 길은 여러 길이 있기에 자기만의 길이 있을 터인 즉…. 어디에 비중을 더 두어야 할 것인가였다. 글을 써야하는 내 목표에 맞는 길을 가야 할 일이다. 삶이 목적이라면 그 과정을 기꺼이 수행해내야 하는 것이기에….
그분의 수필 중에 '고스톱을 위한 12가지 변명'이란 것이 있다. 난 그 수필을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그분께서 고스톱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 하실 때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왜냐면 난 고스톱을 칠 줄 몰랐으니까. 오히려 난 부정적으로 생각한 점이 더 많다. 지금도 습관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이상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난 새해맞이 타종을 기다리면서 그것을 배웠다. 나와 놀려면 그것을 가르쳐주어야 같이 놀 것이 아닌가. 친절한 친구 덕분에 고스톱의 논리와 구조를 잘 배워서 해봤더니몹시 재미있어 허리 아픈 줄도 몰랐다. 기절초풍할 정도로 배꼽 잡는 규칙도 많았다. 모든 놀이에는 철학이 있기 마련인데 그 철학을 자기의 생활에서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또한 문제가 되는 것. 나는 즉시 내게 해당되는 의미 하나를 발견했다. 패 7장을 받으면 그 판의 키를 어떤 방향으로 돌려야 할 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미 들어온 패 중에서 피로 갈 것인가 광으로 갈 것인가를 먼저 정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묘수를 터득하는 것이 사람살이를 알아가는 것과도 같았다. 기본을 해내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도 삶에서와 같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분명한 것은 많이 들어 있는 패들의 쪽으로 키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퍼뜩 생각이 스쳤다. '그래 그동안 내가 산 삶에서 가장 많이 해왔던 일을 끝까지 해 가는 쪽이다'. 새해부터의 방향을 정한 셈이었다. 5년 동안의 문학 수업은 한적한 시간의 틈새에 빠진 샛 길에서 바람이 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길로 올라온 후, 정말은 지금부터 써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려한 도전은 아니었지만 5년의 시간을 솔숲의 체에 올려서 걸러보고 싶었다.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습관에 젖지 말고 뼈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했다. 뼈속이 다 보이고 세포 세포 사이에 낀 것이 보일 때에 써야 하지 않을까. 써야 한다는 강박이나 습관의 굴레가 아닌, 진정 저절로 떠올려지면 그것을 승화시켜내야 할 것 같다. 마음에 찌꺼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수필 자체이신 그분이 계신 한 앞으로도 보내올 그 많은 메일에 재촉당할 것이다. 이글을 읽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그분이 누구신지 잘 아실 거다. 얼마전에 그분은 평생의 요람이었던 KBS '일 분 알림'에도 당당히 출연하셨다. 역시 전북대학교수필창작반을 널리 알리는 알림 광고의 스타가 되신 것이다.
수필 전도사라면 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될 수 없는 그분. 여러 문학 동아리가 많지만 행촌수필문학회의 전도사도 그분의 역할이 크시다. 얼마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아! 그 행촌수필?" 어딘지 기억나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보았다고 얼른 알아차리는 것이다. 각종 사이트에 행촌수필을 알릴 뿐 아니라 회원들의 전용 사이트에도 그분이 회원작품들, 자료와 모든 정보를 다 올리고 계신다. 친절과 수고가 넘쳐나서 몸살하실까 걱정이다. 또 회원들 각자가 즐겨 해야 할 스스로의 의무까지도 담당하시니 그것이 약간은 걱정된다는 점이 없지 않다.
그분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난 전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새로운 일을 많이 해봤다. 그분의 고향사랑도 지독하시다. 그것도 30여 년 동안 내가 정을 내리지 못한 전북지방을 다시 공부하게도 된 계기도 되어서 역사 속의 내 존재와 환경과 생활 배경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때문에' 라는 약간은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을 붙여도 부정의 부정을 다 한 대(大)긍정으로 쓰인 적절한 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분 때문에 이제 난 수필에 사로집히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을 것 같다.
(2006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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