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마르니 정도 마르고

2006.03.28 04:43

김영옥 조회 수:146 추천:40

물이 마르니 정도 마르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김영옥



  밤늦은 시각 누워서 TV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이 떨어지질 않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산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한 모금의 물을 찾아 수 백 리를 터벅터벅 힘없이 다리를 옮기는 것일까? 먼 나라의 이야기인데, 나는 왜 잠을 못 이루고 천 갈래 만 갈래 상념에 잠기는지…….

  생명체에 물이 필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물의 중요성을 겪어보지 않고는 잘 모르리라. 모든 생명의 생사(生死)를 갈음하는 게 바로 물이다. 물 부족을 생각하면 언뜻 물 전쟁이란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른 나라로 흐르는 물줄기를 막아 내나라 쪽으로 돌리려다 분쟁이 일어나거나, 농사철 농민들이 논에서 물꼬 때문에 싸우는 모습도 물과의 전쟁에 다름 아니다.
케냐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일자 식수가 모자랐다. 급수차가 도착하자 물통을 들고 나온 주민들이 서로 먼저 받고싶어 물 호스를 잡고 당기고 하다보니 통으로 들어갈 물은 땅바닥만 흠뻑 적셔놓고 급수차는 달아났다. 허탈한 사람들은 핏대를 올리며 싸움만 했다. 살기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 광경을 보고 전쟁이 따로 없구나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마사이족들은 심한 가뭄이 닥치자 목마른 가축들을 이끌고 수 백 리를 찾아가도 흡족하게 먹이지 못해 애를 태우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견디다못한 원주민들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이주하여 쓰레기장 옆에다 천막을 치고 살면서 우물을 파서 식수로 사용한다. 지하로 흘러든 오염물 때문에 피부병 설사병을 앓고있고, 목욕은 엄두도 못 내고 빨래는 차마 글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다른 음식은 일주일 안 먹고도 살지만 물은 하루만 안 마셔도 못살아요!”라고 외치는 어떤 여인의 넋두리가 아직도 귓전에서 맴돈다.  

  고지대에 사는 정부 귀족들은 저지대에 사는 그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들이 먹는 파인애플 농장에 호수로 물을 뿌리는 것을 보았다. 부익부 빈익빈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장면이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저지대주민들이 측은하고 고지대귀족들이 미워지는 양 갈래 마음이 일렁였다.

  이 시대의 물 문제들을 어디에다 하소연할까? 얼마 전 필리핀 참사와 이상기후도 모두 인재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잘 보존하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아프리카 밀림지대는 무차별 벌목으로 날로 황폐화되고, 세계 곳곳은 난 개발로, 각종 쓰레기들로 물은 점점 오염되고 있어 지구는 몸살을 앓는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라고 예외일순 없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묘책을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나는 잠깐 50년 전을 생각해 보았다. 남편의 직장 따라 군산에서 셋방살이를 했을 때다. 수도시설이 미비하던 때라 가뭄이 들면 그야말로 물 전쟁이었다. 주인집아주머니가 아침이면 공동수도에서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렸다가 물표를 주고 물 한 지게(양철통 2통)씩 져다가 주었다. 그 물로 아기까지 세 식구가 빨래는 물론 목욕까지 해결해야만했다. 한 달 물 값이 봉급의 십분의 일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물을 아껴 쓰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아나운서가 “진정한 결핍은 곧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란 말을 했을 때 고개가 끄덕여졌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도 동정심도 갖지 못한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연을 마구 훼손하여 일시적인 이득만 취하고, 민족 간에, 종교인들끼리, 강대국들이나 약소국가들이나 모두가 전쟁무기 만드는데 엄청난 낭비를 하고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무기개발경쟁은 하지말고 그 많은 비용을 사막지대에도 물이 닿을 수 있도록 송수관을 만들어 물이 풍족한 지역에서 부족한곳으로 보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도 솟아나고 정도 솟아나서 모두가 행복한 삶이 될텐데…….
                                                 (2006년 3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