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 컴플렉스
2006.03.29 04:06
붉은 색 컴플렉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양용모
민중의 붉은 깃발로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굳어 썩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 굳게 맹서해. 비겁한 자야 갈 테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이른바 적기가다. 영화 실미도의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했던 이 노래는 영국의 노동가요 레드플래그(RED FLAG)의 선율을 차용하여 1880년대에 만들어졌으며, 이후 북한에서 인민가, 적기가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도 북한에서는 혁명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붉은 색의 이미지는 강렬한 혁명을 나타내며 공산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민족상잔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이 붉은 색만 봐도 레드 콤플렉스에 전율을 느낀다. 한때는 적기가 같은 가요를 부르는 자는 빨갱이로서 국가보안법처벌대상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머리에 질끈 동여맨 붉은 머리띠는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붉은 혁명을 연상시켜 거부감을 주기도 하였다.
평등세상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진보정당 이미지는 급진적인 붉은 혁명을 꿈꾸는 정당으로 매도되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보수정당의 공격이론이다. 여기에 붉은 색이 적용되고 이 붉은 깃발은 곧 타도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나는 이 붉은 깃발의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노력과 소망과는 달리 엉뚱한데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2002년 6월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다. 느닷없이 붉은 악마란 응원단이 등장하였다. 이 사람들의 실체는 축구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모인 사람들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이 그저 축구응원을 하려고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이 붉은 악마의 이미지가 이름에서도 보이듯이 붉은 색을 주제로 하여 붉은 응원복장을 입고, 붉은 깃발과 붉은 스카프를 응원 소도구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왜 하필 붉은 색이냐고 나무라던 보수주의자들의 나무람도 대한민국이 4강으로 치달으면서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붉은 색에 대한 국민적 혐오도 사라진 것이다.
분단의 조국은 지금 한창 화해로 치닫고 있다. 6.15 공동성명정신에 따라 기초한 남북의 경제, 문화, 군사분야의 협의는 가끔 삐거덕거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 속에 극심한 갈등을 겪은 이데올로기의 후유증은 이제 서서히 걷히고 있다. 마치 붉은 색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듯이 남과 북의 대립이 봄눈 녹듯이 녹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1987년 노동자의 대 투쟁 이후 H자동차노동조합의 지부장을 맡았다. 경찰청 정보과 형사의 감시대상이 된 것이다. 줄기차게 밀려드는 회유와 협박 속에 한 가지 나를 괴롭히는 것이 바로 레드 컴플렉스였다. 나의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시선과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이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바로 왜 노조는 파업만 하면 붉은 머리띠를 매고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행동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노조원이 왜 파업 때 붉은 띠를 매는지 잘 모른다. 강력한 이미지를 위하여 붉은 색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오늘아침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의 붉은 천이 바닥났다고 한다. 올해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입을 옷의 붉은 원단이 바닥난 것이다. 세상 참으로 많이 변했다. 이제는 붉은 색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올 5월31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나가려는 나는 이제 붉은 색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양용모
민중의 붉은 깃발로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굳어 썩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 굳게 맹서해. 비겁한 자야 갈 테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이른바 적기가다. 영화 실미도의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했던 이 노래는 영국의 노동가요 레드플래그(RED FLAG)의 선율을 차용하여 1880년대에 만들어졌으며, 이후 북한에서 인민가, 적기가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도 북한에서는 혁명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붉은 색의 이미지는 강렬한 혁명을 나타내며 공산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민족상잔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이 붉은 색만 봐도 레드 콤플렉스에 전율을 느낀다. 한때는 적기가 같은 가요를 부르는 자는 빨갱이로서 국가보안법처벌대상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머리에 질끈 동여맨 붉은 머리띠는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붉은 혁명을 연상시켜 거부감을 주기도 하였다.
평등세상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진보정당 이미지는 급진적인 붉은 혁명을 꿈꾸는 정당으로 매도되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보수정당의 공격이론이다. 여기에 붉은 색이 적용되고 이 붉은 깃발은 곧 타도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나는 이 붉은 깃발의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노력과 소망과는 달리 엉뚱한데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2002년 6월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다. 느닷없이 붉은 악마란 응원단이 등장하였다. 이 사람들의 실체는 축구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모인 사람들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이 그저 축구응원을 하려고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이 붉은 악마의 이미지가 이름에서도 보이듯이 붉은 색을 주제로 하여 붉은 응원복장을 입고, 붉은 깃발과 붉은 스카프를 응원 소도구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왜 하필 붉은 색이냐고 나무라던 보수주의자들의 나무람도 대한민국이 4강으로 치달으면서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붉은 색에 대한 국민적 혐오도 사라진 것이다.
분단의 조국은 지금 한창 화해로 치닫고 있다. 6.15 공동성명정신에 따라 기초한 남북의 경제, 문화, 군사분야의 협의는 가끔 삐거덕거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 속에 극심한 갈등을 겪은 이데올로기의 후유증은 이제 서서히 걷히고 있다. 마치 붉은 색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듯이 남과 북의 대립이 봄눈 녹듯이 녹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1987년 노동자의 대 투쟁 이후 H자동차노동조합의 지부장을 맡았다. 경찰청 정보과 형사의 감시대상이 된 것이다. 줄기차게 밀려드는 회유와 협박 속에 한 가지 나를 괴롭히는 것이 바로 레드 컴플렉스였다. 나의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시선과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이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바로 왜 노조는 파업만 하면 붉은 머리띠를 매고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행동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노조원이 왜 파업 때 붉은 띠를 매는지 잘 모른다. 강력한 이미지를 위하여 붉은 색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오늘아침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의 붉은 천이 바닥났다고 한다. 올해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입을 옷의 붉은 원단이 바닥난 것이다. 세상 참으로 많이 변했다. 이제는 붉은 색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올 5월31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나가려는 나는 이제 붉은 색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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