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2006.03.29 09:23

박주호 조회 수:142 추천:54

안녕히 가세요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박주호


  나는 요즘 새로운 언어문화에 어리둥절해 하고있다. 컴퓨터에 글을 올리는 젊은 사람들의 언어 때문에 그렇다. 한글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나오도록 배웠는데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비교적 알아볼 만하다. 어쩌다 대화방을 들어가면 괜히 들어갔구나 싶어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물론 대화를 하듯 빠른 속도로 글자를 쳐야 하기 때문에 받침을 생략하거나 약어로 쓴다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니까.
인사말도 마찬가지다. 표준말을 쓴다는 경기도에 살 때는 몰랐던 말들을 접하고, 은근히 기분이 상해 인상을  찌푸린 내게 아내는 이곳 인사문화이니 이해를 하라고 했다.

대형마트 출구에서는 예쁜 아가씨들이 표준어를 쓰는 것 같다. 그러나 이곳 일반 음식점에 가면 내 얼굴이 못생겨서 그런지 반가워하지도 않는다. 인사를 받으려고 간 것은 아니지만 영 기분이 좋지 않아 배가 고파도 맛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나올 때는 더욱 가관이다. 손님인데 다음에 또 오게 하려면 친절하게는 못해도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는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나마 한다는 것이 "가세요!"라고 한다. "가세요"라니, 어디로 가란 말인가? 물론 다 먹었으니 가야겠지. 가라면 가야지 무슨 불평이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 고장의 인사말이란다. 같은 인사라도 영 뒷맛이 떫다. "안녕히 가세요!"라든지, "잘 가세요!"라고 하면 돈이 드나, 시간이 많이 걸리나? 밤길이라면 "조심해서 가십시오."라고 할 수도 있다. 기껏해야 "안녕히" 단 세 글자만 앞에 붙이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할 텐데 꼭 "가세요."라고 한다.
그렇다고 인사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충고를 한 적은 없다. 이곳의 인사문화라고 하는 데 내가 뭐라고 할 것인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제일 강조하고 철저히 교육을 받은 것이 있다. "동네 어른들을 보면 반드시 인사를 잘해야 한다."라고. 그래서 학교를 오갈 때나 놀 때도 만나는 모든 분들께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진지 잡수셨어요?" 가 바른 인사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옛날 어른들이 하도 배를 곯아 진지 잡수셨는지가 제일 궁금했고, 그것이 인사말이 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고개만 꾸뻑하고 지나치면 인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어른이 못 볼 수도 있으니까. 어쩌다 앞만 보고 간다든지 실수로 그냥 지나치면 그 날 저녁 아버지에게 "그 녀석 인사를 잘 안 하더라."하고 보고가 되는지 불호령이 떨어지고 야단을 맞았다. 인사를 했어도 어른의 답례가 없을 때가 있다. 역시 그 날도 야단을 맞는 억울한 경우가 가끔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친구도 만나고 그냥 아는 사람도 만난다. 손위 사람이면 인사를 깍듯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평소에 알고 지내긴 했어도 왠지 거부감이 들어 썩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인사를 하는 것이 맞는데 그냥 모른 체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줄 때도 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면 청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악수를 하게 된다. 어떤 친구는 습관적으로 손만 내밀고 잡지를 않는다. 네가 잡아라 하는 식이다. 악수를 안한 것보다는 나을 지 몰라도 손을 놓은 다음 기분이 찜찜하다. 거만한 느낌이 손을 타고 올라온다. 악수를 할 때는 약간 힘을 줘서 잡아야 따뜻한 정이 통하지 않을까. 또 다른 친구는 잡은 손에 또 다른 손을 얹어 톡톡 두드리기도 하고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그런 친구가 좋다. 물론 여성들의 손을 심하게 잡으면 실례가 되겠지만. 여성들과 악수할 일이 없는 나는 참으로 다행이다.

각 지방마다 언어의 특색이 있고 방언도 있다. 그 지방 인사문화라며 이해하라고 하면 더 이상 이유를 달지 않을 것이다. 요즘 유행인 약어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세요" 속에는 "안녕히"도 들어있고 "조심해서"도 들어있다는 아내의 그럴듯한 설명이 맞을 지도 모른다. 짧지만 억양의 차이로 이해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인사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사를 하는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트집을 잡았다면 내가 반성해야 할 일이겠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좀 더 상냥하고 온정이 오가는 인사 한 마디가 아쉬운 것은 비단 나만의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