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씨의 순정
2006.03.30 09:55
순정 씨의 순정(純情)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신영숙
봄을 맞으려면 구례 산동마을에 가서 산수유를 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스쳐 지나갈 기회는 많았지만 직접 그곳을 찾아가기는 처음이었다.
수필창작 중급 반 문우들과 함께 봄맞이를 떠나기로 한 날은 쌀쌀했지만 황사도 없는 맑은 날씨였다. 특별한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문우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승용차 석대로 13명의 일행이 나들이에 나섰다. 중급 반에 올라와 합반한지 딱 한 달만의 이번 나들이는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남원을 거쳐 남쪽으로 달려 우리의 목적지 전남 곡성 태안사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천년 고찰이 산세 좋고 아늑한 장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보물로 사리탑이 모셔져있었다. 넓은 절터 군데군데에 법당과 부속건물들이 자리잡고 그 외 경내에 많은 문화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특히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3층 석탑이 연못에 서있어 인상적이었다. 전문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겉만 눈으로 살피고 주변 경치만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를 떠나기 전에 그곳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미리 알았더라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을 둘러보고 다음장소인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로 향했다. 가는 도중 점심식사를 하러 들른 식당 주변도 노란 방울 같은 꽃망울을 매단 산수유 꽃들이 쌀쌀한 바람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하늘거리고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오늘 산동에서 실감했다. 산수유 꽃보다 화사한 순정 씨의 미소와 산수유 꽃이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그녀의 재롱을 보았던 까닭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행촌수필문학회가 마련한 수필의 밤에서였다. 장기자랑에 그녀가 반대표로 나와 스피치를 보여주었었다. 첫인상이 좋아 보여 참 젊고 예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그녀를 봤을 때는 겨울방학 특강 때였다. 지난번에 한 번 봤기 때문에 눈인사 정도나 나누었다. 세 번째 그녀를 만났을 때는 3월 새 학기 때 우리가 중급 반으로 올라가면서부터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아래지만 수필 반 선배인 그녀가 조금은 어렵고 서먹했다. 그리고 오늘, 그녀의 내면을 보고 나는 가슴을 열고 싶었다.
사람이 수많은 재주를 가졌지만 그 중에 으뜸이 남에게 기쁨을 주는 말과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그녀의 뛰어난 유머와 재치 있는 말솜씨에 우리 모두가 마음을 활짝 열었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보이지 않은 서먹서먹한 울타리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모두가 하나되는 순간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녀는 타고난 재롱둥이였다. 우리여자들에게 비친 그녀의 모습이 한결같이 칭찬일색이니 집에서 남편에게 받는 사랑은 오죽하랴!
우리는 점심상을 앞에 놓고 정말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우리에겐 서먹함을 감출 마음도 없이 모두가 긴장을 풀고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봄나들이 나왔다가 예쁜 마음 하나를 얻게 되었다. 점심식사 후 온 마을을 휘감고있는 산수유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마을 속에서도, 뒷산과 옆 산에서도 노란 산수유가 우리를 환영하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많은 나무가 가을에 열매를 맺으면 이곳 여인들의 치아가 남아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 산수유 씨앗을 까는 기계가 개발되었다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논둑 사이 경계가 모두 낮은 돌담으로 쌓여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얼마나 깊은 산골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곳이 지금은 모두가 그리워 찾아가는 관광지가 되었으니 세월이 무상(無常)하다고 해야할지……. 산수유와 이별하고 전주로 달리는 차 속에서도 순정 씨의 재롱은 계속되었다. 우리 차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차창 밖으로 그녀는 가늘고 하얀 손을 어김없이 흔들어대며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정말 미소를 머금게 하는 광경이었다.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웃음을 선해주었다.
우리들이 수필을 공부하면서 힘들어할 때마다 일어설 수 있도록 지팡이가 되어주신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오늘 편히 다녀올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신 김정자 님, 운전하느라 많은 수고를 해주시고 음으로 양으로 언제나 반을 위해 솔선수범 해주시는 조명택, 배윤숙 님, 운전을 하면서 전부를 통솔하느라 수고하신 박정순 회장님, 막내 귀염둥이 최정자 씨, 침묵도사 김호택 님, 맏언니 김인순 님, 소프라노 가수 김화진 님, 늦둥이 엄마 이민숙 님,볼그래 미인 한애근 님 등 함께 하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함께 가지 못한 주광탁, 이승만, 유영희, 최복운 님들께는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다음엔 꼭 동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 강의시간에 만나면 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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