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위기
2006.04.03 18:31
남자의 위기
-일처다부시대는 올 것인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예전엔 양반이 첩실(妾室)을 두는 것쯤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랑방에서 가장의 기침소리만 커도 온 집안이 긴장했었다. 그 시대의 가장은 한 가정의 제왕처럼 군림하며 살았다. 내가 좀더 일찍 태어나서 그런 시대에 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 시대를 그리워할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크게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과거 농경시대에 남자는 중요한 노동력의 원천이었다. 농사일이나 땔감 준비, 집안일 등에는 남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니 남자 없이 집안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런 시대에 남성은 당연히 그 권위가 존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전쟁이 나거나 나라의 부역에 동원되는 것도 역시 남자였다. 가까운 한국전쟁 결과만 봐도 전사하거나 실종된 국군이 13만 7천명이나 된다. 민간인 희생자 등을 포함하면 13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희생자의 대다수가 남자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남자가 얼마나 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던가. 그래서 남자의 인구는 줄어들고 그 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남성이 처한 상황과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현대는 모든 분야에서 남녀의 역할 구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남자가 감당할 국가적 재난이 없는 한, 남녀가 대등한 사회적 활동을 해도 무리가 없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남성 몫으로 여겼던 많은 부분들이 여성에게 야금야금 점령당하고 있다. 나아가서 지금은 그 여성의 영역확대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남성의 위기상황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각종 고시에서 수석은 여성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 중요한 공무원 시험의 합격 비율도 여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육해공군사관학교의 수석졸업자리도 여성들이 차지한다. 초등학교에 남자 선생이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얘기는 벌서 오래 전부터 나왔다. 경제계에서도 성공한 여성 경영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정당의 대표, 국무총리가 여성이고, 장관이나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는 아예 공식적으로 여성들에게 일정 비율을 할당해 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여성점유의 폭이 점점 늘고 있고, 더 나아가 남녀 동등한 수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제 남녀의 구분이란 무의미해져 가는 급속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니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여성이 약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성 실업자를 늘어나게 한다. 가정에서도 남녀의 역할이 바뀌어 가는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출연한 남성전업주부가 앞치마를 두르고 살림을 하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성전업주부가 어찌 한두 사람뿐이겠는가?
남자가 군복무의 보상으로 받던 취업 시 가산점도 위헌 판결이 났다. 이미 시행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가족법은 부부가 자식의 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다. 더 이상 남자라는 이유로 받을 수 있는 우선권이란 없다. 이제는 남녀의 무한경쟁에서 능력 없는 남자는 어디에도 설자리가 없다. 이러다가는 남자가 가정살림과 자녀양육을 담당하며, 부인을 내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녀간 임무교대의 시대가 온 것 같다.
나는 어느 일간신문에서 '아시아 남초(男超) 시한폭탄'이라는 기사를 보며 남성 위기 시대가 아주 가까워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보다 남성이 많은 남초(男超) 불균형은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사회 불안정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 일부지역에서 신생아 성비가 여아 100명에 남아 13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대만이 119명, 우리나라도 112명으로 남초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추세로 2020년에 가면 중국에는 4천만 명의 남자가 신부 감이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마 한국도 신부 감 모자라기는 정도의 차이일 뿐 중국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남아 선호사상과 출산기피 분위기가 계속 되는 한 남초현상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요즘 학급의 자리 배정 때 남녀 짝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여자와 짝이 되지 않는 남자아이들은 인상이 변한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농촌총각 결혼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네 농촌총각들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등 여러 나라에서 신부를 구해오고 있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으쓱댈 시대도 흘러간 옛 노래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결혼 못하는 남성들이 증가할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니겠는가.
이래저래 남자들의 처지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인 것 같다. 어쩌면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남자의 위기시대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혹시 여성의 사회, 경제적인 역할이 증대되고 남자가 더 많다보면, 조선시대 양반이 첩실을 거느린 것과는 반대로 여성이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사는 일처다부(一妻多夫)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세대는 변화된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들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세대들은 이미 변화된 현실에 들어서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후대들도, 아마 나처럼 또 변화하는 미래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모든 변화는 항상 균형에 맞는 발전적인 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6.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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