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냄새와 수필냄새
2006.04.06 20:56
마라톤냄새와 수필냄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일요일 오전10시면 예배를 마치고 교회현관에서 담임목사, 장로들과 인사를 한다. 평소엔 그냥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었는데 오늘은 담임목사가 “전주마라톤대회에 안 나가셨군요?”라며 인사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요일만 되면 전국 마라톤대회는 다 찾아 다녔다. 내가 참가하지 않으면 마라톤대회가 개최되지 못할까 걱정되어 인지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달렸었다. 덕분에 마라톤철만 되면 교회출석은 아예 하지 못해서 담임목사가 늘 걱정하였다. 그런 내가 전주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석하지 않고 교회에 나왔으니 담임목사도 깜짝 놀랄 수밖에…….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謀攻篇)에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란 말이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마라톤을 알고 나의 건강을 알면 위험하지 않다. 그저 욕심껏 달리다가는 화를 당하고 만다. 어머니를 닮아 선천성 고혈압이 있는 나는 오래 전부터 혈압강하제를 먹고 있다. 이제는 내 나이도 경쟁을 하거나 무리한 운동은 조심할 때가 되었다. 마라톤대회를 나가면 하프코스(21.0975km)정도는 무리가 없으나 울트라마라톤(100km)은 물론이고 풀코스(42.195km)도 힘들다. 그래서 올부터는 마라톤 대신 매일 1시간정도 건강달리기와 수영, 인라인 등 폭넓은 운동을 하고 있다.
전주마라톤대회가 있던 날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라톤대회에 대한 인사뿐이었다. 친척들과 친구들에게서 나는 당연히 마라톤대회에 나갔으려니 하며 완주 축하전화를 해주었다. 아내도 몇 명의 친구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하였다. 심지어 회사 여직원들까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마라톤에 대한 인사를 받았다고 하였다. 마라톤을 시작한 5년 동안에 내가 어지간히 마라톤냄새를 풍기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으레 나를 생각하게 되가 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냄새가 있다. 갓난아이에게서는 엄마의 젖 냄새가 나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가씨에게서는 화장품냄새가 난다. 노인들에게서는 젊었을 때 나지 않던 노인냄새가 난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주 목욕을 해야 한다. 나도 아침에는 수영을 하며 씻고 오후엔 인라인을 타거나 1시간을 뛰고 나서 또 샤워를 한다. 그뿐 아니라 저녁식사시간엔 하루 내내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해서 더러워진 입 속을 알코올 한 잔으로 소독도 한다. 성철 큰스님에게서는 자비로운 부처냄새가 나고, 마더 데레사 수녀에게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예수 냄새가 난다. 그런데 나에게서는 마라톤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수영을 10년 넘게 했어도 수영냄새는 나지 않고 마라톤냄새만 나는 것이 이상하다. 아마 수영은 맑은 물에 몸을 담그기 때문에 다 씻겨져서 아무리 오래 수영을 하여도 내게서 수영냄새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요즘에는 열심히 수필을 쓴다. 자나깨나 수필생각뿐이다. 하지만 나에게서 수필냄새가 나질 않는다.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수필을 읽을 때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피천득 선생의‘수필’이란 글에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중략)덕수궁 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었다. 이 균형 속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수필의 냄새도 그러하리라. 진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냄새가 나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나는 그런 냄새일 것이다.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꽃잎 같은 여유가 수필의 냄새가 아닐까 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들 모두가 모자를 쓰고 다녔다. 검정모자에 학교마다 다른 모표(帽標)를 달고 다녔다. 내가 다닌 학교는 모자둘레에 하얀 줄을 둘러서 더욱 멋을 냈었다. 혹시나 모자를 안 쓰고 학교에 가는 날엔 규율부원들에게 이름이 적혀서 기합을 받곤 했었다. 하루는 멋쟁이로 불리는 선생님께서 모자를 쓸 때는 사관생도처럼 바르게 쓰지 말고 약간 기울어지게 쓰라고 하셨다. 사람에게선 약간 기울어진 모자처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비누 싼 종이에선 비누냄새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난다고 한다. 수필 몇 편 쓰고, 등단했다고 해서 내게서 수필냄새가 나진 않을 것이다. 수필냄새가 나려면 수필처럼 생각하고 수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듯싶다. 5년 동안 오직 마라톤만을 생각하고, 눈비가 오는 날에도 꾸준히 뛰었기에 마라톤냄새가 나듯,수필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내게서도 청국장 같이 구수한 수필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다.
(2006. 4. 7.)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일요일 오전10시면 예배를 마치고 교회현관에서 담임목사, 장로들과 인사를 한다. 평소엔 그냥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었는데 오늘은 담임목사가 “전주마라톤대회에 안 나가셨군요?”라며 인사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요일만 되면 전국 마라톤대회는 다 찾아 다녔다. 내가 참가하지 않으면 마라톤대회가 개최되지 못할까 걱정되어 인지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달렸었다. 덕분에 마라톤철만 되면 교회출석은 아예 하지 못해서 담임목사가 늘 걱정하였다. 그런 내가 전주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석하지 않고 교회에 나왔으니 담임목사도 깜짝 놀랄 수밖에…….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謀攻篇)에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란 말이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마라톤을 알고 나의 건강을 알면 위험하지 않다. 그저 욕심껏 달리다가는 화를 당하고 만다. 어머니를 닮아 선천성 고혈압이 있는 나는 오래 전부터 혈압강하제를 먹고 있다. 이제는 내 나이도 경쟁을 하거나 무리한 운동은 조심할 때가 되었다. 마라톤대회를 나가면 하프코스(21.0975km)정도는 무리가 없으나 울트라마라톤(100km)은 물론이고 풀코스(42.195km)도 힘들다. 그래서 올부터는 마라톤 대신 매일 1시간정도 건강달리기와 수영, 인라인 등 폭넓은 운동을 하고 있다.
전주마라톤대회가 있던 날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라톤대회에 대한 인사뿐이었다. 친척들과 친구들에게서 나는 당연히 마라톤대회에 나갔으려니 하며 완주 축하전화를 해주었다. 아내도 몇 명의 친구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하였다. 심지어 회사 여직원들까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마라톤에 대한 인사를 받았다고 하였다. 마라톤을 시작한 5년 동안에 내가 어지간히 마라톤냄새를 풍기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으레 나를 생각하게 되가 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냄새가 있다. 갓난아이에게서는 엄마의 젖 냄새가 나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가씨에게서는 화장품냄새가 난다. 노인들에게서는 젊었을 때 나지 않던 노인냄새가 난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주 목욕을 해야 한다. 나도 아침에는 수영을 하며 씻고 오후엔 인라인을 타거나 1시간을 뛰고 나서 또 샤워를 한다. 그뿐 아니라 저녁식사시간엔 하루 내내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해서 더러워진 입 속을 알코올 한 잔으로 소독도 한다. 성철 큰스님에게서는 자비로운 부처냄새가 나고, 마더 데레사 수녀에게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예수 냄새가 난다. 그런데 나에게서는 마라톤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수영을 10년 넘게 했어도 수영냄새는 나지 않고 마라톤냄새만 나는 것이 이상하다. 아마 수영은 맑은 물에 몸을 담그기 때문에 다 씻겨져서 아무리 오래 수영을 하여도 내게서 수영냄새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요즘에는 열심히 수필을 쓴다. 자나깨나 수필생각뿐이다. 하지만 나에게서 수필냄새가 나질 않는다.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수필을 읽을 때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피천득 선생의‘수필’이란 글에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중략)덕수궁 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었다. 이 균형 속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수필의 냄새도 그러하리라. 진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냄새가 나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나는 그런 냄새일 것이다.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꽃잎 같은 여유가 수필의 냄새가 아닐까 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들 모두가 모자를 쓰고 다녔다. 검정모자에 학교마다 다른 모표(帽標)를 달고 다녔다. 내가 다닌 학교는 모자둘레에 하얀 줄을 둘러서 더욱 멋을 냈었다. 혹시나 모자를 안 쓰고 학교에 가는 날엔 규율부원들에게 이름이 적혀서 기합을 받곤 했었다. 하루는 멋쟁이로 불리는 선생님께서 모자를 쓸 때는 사관생도처럼 바르게 쓰지 말고 약간 기울어지게 쓰라고 하셨다. 사람에게선 약간 기울어진 모자처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비누 싼 종이에선 비누냄새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난다고 한다. 수필 몇 편 쓰고, 등단했다고 해서 내게서 수필냄새가 나진 않을 것이다. 수필냄새가 나려면 수필처럼 생각하고 수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듯싶다. 5년 동안 오직 마라톤만을 생각하고, 눈비가 오는 날에도 꾸준히 뛰었기에 마라톤냄새가 나듯,수필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내게서도 청국장 같이 구수한 수필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다.
(200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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