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대기의 끗발
2006.04.09 05:15
작대기의 끗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완장에 작대기 한 개와 두 개, 세 개의 차이를 알아?"
남편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김 선생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조문 간 장례식장에서의 일이다. 다들 조 선생이 던지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져 상주들이 왼쪽 팔에 차고 있는 완장을 주목하였다. 신경을 쓰고 살펴보니 상주들의 완장에 그어진 줄의 숫자가 제각각이었다.
"작대기 세 개는 없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일행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세 개는 딱 한 사람만 차는 거라고. 맏상제만 차는 특권이야."
장례식장을 숱하게 다녀 봤건만 나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8년 전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완장에도 서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었다.
조 선생은 전날 그곳에 왔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는 것이다. 누구는 완장에 작대기가 두 개이고, 누구는 하나만 있더란다. "장례식장에도 군대처럼 계급이 있었나?" 한 번 궁금증이 일면 그걸 풀기 전에는 잠을 못 이루는 조 선생은, 옆에 있는 문상객에게 작대기 숫자의 비밀에 대해 물었단다.
"맏상제는 작대기 세 개를 달고, 다른 아들들은 두 개, 그리고 손자나 사위는 무조건 한 개랍니다."
혹 맏아들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장손이 맏상제 노릇을 해도 한 개만 달아야 한단다. 다른 아들 그 누구도 먼저 간 맏이의 차지인 작대기 세 개 짜리 완장을 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완장에 작대기가 하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제일 끗발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딸이나 며느리 끗발은 완전 개 끗발이야."
평소 걸걸한 입담으로 소문난 조 선생이 완장도 찰 주제가 못되는 여자를 걸고넘어졌다.
"이건 명백한 성차별이야. 사실 시부모를 모시는데 제일 수고하는 사람은 며느리인데 완장도 못 차는 끗발이라고요?"
다섯 집이 모여서 하는 친목계원들 중 네 집이 장남이다 보니 맏며느리들의 불만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담에 작대기 세 개 달게 되면 우리 마누라한테는 갈매기를 달아줄 거야." 누군가의 아내를 향한 아부 발언으로 초상마당에 때아닌 웃음판이 벌어졌다.
"거 참나, 이 동네는 너무 시끄럽네."
그 집의 맏며느리가 식은 찌개를 바꿔주라고 시키며 일침을 놓는다.
"에이! 완장도 없으면서 큰 소리는……." 조 선생은 머리에 흰 천을 끼워 핀을 꽂은 맏상제의 아내쯤은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무슨 말인지 선뜻 감이 안 잡히는 맏며느리가 그냥 따라 웃어 버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뭔가 엉뚱한 이야기들에 심취해 있음이 분명하다는 눈빛이다.
"어제 왔으면 됐지 뭐 하러 오늘 단체로 또 왔어?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김에 그동안 못했던 모임 갖는 거야?"
잠시 조문객이 없는 틈을 타서 맏상제가 곁에 와서 앉는다. 모두들 완장에 눈이 간다.
"어? 작대기가 두 개밖에 없잖아?"
일행들의 시선이 완장에게 향한 것을 눈치 챈 상주가 왜 그러냐는 식의 얼굴이다. 조 선생은 친절하게도 맏상제가 완장을 잘못 찼다고 일깨워 주었다. 본인의 완장에 대해서 무지하기는 맏상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러는 거야? 난 누가 채워 주기에 모르고 그냥 찼지."
그리고는 누군가를 불러 상을 다시 보라고 일렀다. 일행들이 말려도 작대기 세 개 계급인 완장이 내린 명령은, 곧바로 작대기가 없는 완장들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거 봐. 작대기 세 개의 끗발이 제일 세지? 완장 없는 맏며느리는 겨우 찌개만 갈아주는데 세 개가 나서니 상 전체가 바뀌잖아?"
조 선생의 입담은 여전히 작대기 세 개인 완장의 끗발을 내세운다. 오랜 기간 투병하던 아버님이 81세로 편안히 가셨으니 호상[好喪]이라지만,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에 소리를 낮춰 보려해도 삐죽삐죽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장례문화의 기초가 아직은 유교적 색채로 유지되고 있는 바는 알지만 장례식장에서까지 철저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 여자 분들은 여성부에 딸과 며느리도 완장을 차게 해달라고 건의하세요. 명백한 성차별이니까 마땅히 항의해야 하지 않아요?"
부모의 죽음 앞에서까지 여성이라 차별 받는 것이 무던히 억울할 거라고 남성들이 입을 모으지만 기실 여성 그 누구도 완장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다할 묘책도 없이 장례식장의 성차별 문제는 웃음으로 끝나 버렸지만, 그 틈에 나는 메모장을 꺼냈다. 장례식장의 성차별 운운하기에는 우리나라 전통과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면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완장에 작대기 한 개와 두 개, 세 개의 차이를 알아?"
남편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김 선생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조문 간 장례식장에서의 일이다. 다들 조 선생이 던지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져 상주들이 왼쪽 팔에 차고 있는 완장을 주목하였다. 신경을 쓰고 살펴보니 상주들의 완장에 그어진 줄의 숫자가 제각각이었다.
"작대기 세 개는 없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일행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세 개는 딱 한 사람만 차는 거라고. 맏상제만 차는 특권이야."
장례식장을 숱하게 다녀 봤건만 나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8년 전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완장에도 서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었다.
조 선생은 전날 그곳에 왔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는 것이다. 누구는 완장에 작대기가 두 개이고, 누구는 하나만 있더란다. "장례식장에도 군대처럼 계급이 있었나?" 한 번 궁금증이 일면 그걸 풀기 전에는 잠을 못 이루는 조 선생은, 옆에 있는 문상객에게 작대기 숫자의 비밀에 대해 물었단다.
"맏상제는 작대기 세 개를 달고, 다른 아들들은 두 개, 그리고 손자나 사위는 무조건 한 개랍니다."
혹 맏아들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장손이 맏상제 노릇을 해도 한 개만 달아야 한단다. 다른 아들 그 누구도 먼저 간 맏이의 차지인 작대기 세 개 짜리 완장을 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완장에 작대기가 하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제일 끗발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딸이나 며느리 끗발은 완전 개 끗발이야."
평소 걸걸한 입담으로 소문난 조 선생이 완장도 찰 주제가 못되는 여자를 걸고넘어졌다.
"이건 명백한 성차별이야. 사실 시부모를 모시는데 제일 수고하는 사람은 며느리인데 완장도 못 차는 끗발이라고요?"
다섯 집이 모여서 하는 친목계원들 중 네 집이 장남이다 보니 맏며느리들의 불만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담에 작대기 세 개 달게 되면 우리 마누라한테는 갈매기를 달아줄 거야." 누군가의 아내를 향한 아부 발언으로 초상마당에 때아닌 웃음판이 벌어졌다.
"거 참나, 이 동네는 너무 시끄럽네."
그 집의 맏며느리가 식은 찌개를 바꿔주라고 시키며 일침을 놓는다.
"에이! 완장도 없으면서 큰 소리는……." 조 선생은 머리에 흰 천을 끼워 핀을 꽂은 맏상제의 아내쯤은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무슨 말인지 선뜻 감이 안 잡히는 맏며느리가 그냥 따라 웃어 버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뭔가 엉뚱한 이야기들에 심취해 있음이 분명하다는 눈빛이다.
"어제 왔으면 됐지 뭐 하러 오늘 단체로 또 왔어?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김에 그동안 못했던 모임 갖는 거야?"
잠시 조문객이 없는 틈을 타서 맏상제가 곁에 와서 앉는다. 모두들 완장에 눈이 간다.
"어? 작대기가 두 개밖에 없잖아?"
일행들의 시선이 완장에게 향한 것을 눈치 챈 상주가 왜 그러냐는 식의 얼굴이다. 조 선생은 친절하게도 맏상제가 완장을 잘못 찼다고 일깨워 주었다. 본인의 완장에 대해서 무지하기는 맏상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러는 거야? 난 누가 채워 주기에 모르고 그냥 찼지."
그리고는 누군가를 불러 상을 다시 보라고 일렀다. 일행들이 말려도 작대기 세 개 계급인 완장이 내린 명령은, 곧바로 작대기가 없는 완장들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거 봐. 작대기 세 개의 끗발이 제일 세지? 완장 없는 맏며느리는 겨우 찌개만 갈아주는데 세 개가 나서니 상 전체가 바뀌잖아?"
조 선생의 입담은 여전히 작대기 세 개인 완장의 끗발을 내세운다. 오랜 기간 투병하던 아버님이 81세로 편안히 가셨으니 호상[好喪]이라지만,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에 소리를 낮춰 보려해도 삐죽삐죽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장례문화의 기초가 아직은 유교적 색채로 유지되고 있는 바는 알지만 장례식장에서까지 철저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 여자 분들은 여성부에 딸과 며느리도 완장을 차게 해달라고 건의하세요. 명백한 성차별이니까 마땅히 항의해야 하지 않아요?"
부모의 죽음 앞에서까지 여성이라 차별 받는 것이 무던히 억울할 거라고 남성들이 입을 모으지만 기실 여성 그 누구도 완장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다할 묘책도 없이 장례식장의 성차별 문제는 웃음으로 끝나 버렸지만, 그 틈에 나는 메모장을 꺼냈다. 장례식장의 성차별 운운하기에는 우리나라 전통과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면서…….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234 | 칠순 어머니와 자전거 | 황점숙 | 2006.04.11 | 77 |
| 233 | 청소와 청소놀이 | 조내화 | 2006.04.11 | 77 |
| 232 | 꿈에 본 은발농원 | 김병규 | 2006.04.11 | 67 |
| 231 | 혼자 나선 봄 사냥 | 유영희 | 2006.04.11 | 60 |
| 230 | 바람불어 좋은날 | 양용모 | 2006.04.11 | 79 |
| 229 | 빨간 날은 노는 날 | 조종영 | 2006.04.11 | 63 |
| 228 | 이렇게 쉬운 걸 가지고 | 정현창 | 2006.04.09 | 77 |
| 227 | 날마다 연극하는 남자 | 박정순 | 2006.04.09 | 65 |
| 226 | 왕따 | 배윤숙 | 2006.04.09 | 60 |
| » | 작대기의 끗발 | 유영희 | 2006.04.09 | 68 |
| 224 | 아프려면 미리 내 허락을 받으세요 | 배윤숙 | 2006.04.06 | 69 |
| 223 | 마라톤냄새와 수필냄새 | 정현창 | 2006.04.06 | 74 |
| 222 | 그는 누구일까 | 유응교 | 2006.04.06 | 67 |
| 221 | 목련꽃 피는 계절이 오면 | 이은재 | 2006.04.05 | 99 |
| 220 | 남자의 위기 | 조종영 | 2006.04.03 | 99 |
| 219 | 군산 봄나들이 | 남순애 | 2006.04.01 | 113 |
| 218 | 복음의 황금어장 미얀마 | 조명택 | 2006.03.31 | 114 |
| 217 | 순정 씨의 순정 | 신영숙 | 2006.03.30 | 171 |
| 216 | 안녕히 가세요 | 박주호 | 2006.03.29 | 142 |
| 215 | 붉은 색 컴플렉스 | 양용모 | 2006.03.29 | 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