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2006.04.09 06:42

배윤숙 조회 수:60 추천:9

왕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중) 배윤숙




  체육관에 다니는 똘똘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단다. 쉬는 시간이면 똘똘이보다 키가 더 큰 아이들이 질겅질겅 밟아댄단다. 하교시간이면 교실 뒤편으로 끌려가 두드려 맞고 오는 일도 종종 있단다. 부관장님 대신 아이들을 수련시키고 있던 내게 상담 차 찾아온 똘똘이 엄마가 분통을 터트리며 얘기한 표현 그대로다. 질겅질겅 밟아대다니 무슨 이불 빨래도 아니고 어떻게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한테까지 학교폭력이라는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눈물을 흘린다면 마치 손바닥에 그 눈물이 커다란 수정구슬처럼 데구루루 쏟아질 것만 같이 커다란 눈을 가진 똘똘이다. 키가 조금 작은 편이지만 목소리만은 우렁차서 구령이라도 외치면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린다. 가끔 장난이 심해서 나무라기라도 할라치면 표정이 굳어지면서 딴청을 피운다던가, 게임을 할 때면 자기주장이 강하면서 삐지는 것을 보면서 의아해 하긴 했다. 그러나 심부름도 잘하고 관원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며 해맑게 웃곤 해서 설마 학교에서 반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천방지축 골목대장 같은 장난꾸러기 똘똘이다.

  동생보다 항상 잘해야 하고, 앞서야만 하는 욕심 많은 성격이 학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반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생겼고, 또한 지지 않으려 하는 성격으로 인해 키 큰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며, 지나다니면서 툭툭 건드리는 것이 끝내는 하교시까지 연장된 것 같다는 똘똘이 엄마의 얘기였다. 때리는 아이들은 횟수가 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지 견디다 못한 똘똘이 엄마가 그 아이들 부모에게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십여 년 동안 상담활동을 하면서 학교폭력에 대해 문제를 접해보았지만 웃는 모습이 너무도 예쁜 똘똘이가 따돌림을 당한다니 앞으로 그 아이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자못 걱정이다.

왕따! 따돌림!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팔달산 옛 성(城) 아래 자리잡은 수원여고는 높은 도서관 건물의 층계가 달팽이처럼 생겼다. 그 층계에 서서 내려다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우리들이 stone bench 라고 이름지은 돌들이 놓여있는 우리 여학생들의 쉼터가 있었다.
체육실 앞에는 손이 닿을 듯 말듯 물 무지개를 만들며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는 예쁜 연못이 있고, 그 옆에는 말랑말랑한 공을 받아칠 때마다 텅텅 소리가 들리는 수원여고의 자랑거리인 정구장이 있었다. 또한 담쟁이덩굴이 휘감고 도는 빨간 벽돌교실들과 넓은 운동장, 선녀의 거울 같다는 호수‘서호’가 가까이 보이는 경치가 멋진 학교였다.

  삼십 육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3학년이 되면 가정관(家庭館)에 들어갔었다. 일주일 동안 가정주부로서 갖춰야 할 덕목과 예절 등을 익히게 되는데 그때 있었던 어떤 사소한 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K교장 선생님이 우리학교에 부임해 오셔서 집을 구하시는 동안 가정관 앞에 철쭉이 활짝 필 무렵까지 우리들이 실습하는 가정관 방 하나를 빌려 쓰고 계셨다.  

  우리 조(組)의 가정관 실습이 끝나는 날 저녁 무렵, 어느 여성이 가정관으로 교장선생님을 찾아왔다. 교장선생님은 외지로 출타 중이셨으나 그 여성은 돌아가지 않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은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교장 선생님을 기다리던 여성의 정체가 궁금한 나머지 잠을 쫓고 큰방에 모여 앉아 수군거리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끝내 나타나지 않으셨고 우리들은 밤늦도록 쑥떡거리고 있었더니 그 날 밤 숙직이셨던 수학 선생님이 달려오셨던 것이다. 가정관에서 일어난 일이 소문으로 잘못 알려 질까봐 아이들 입 단속을 하시려고 실장인 나를 불러내신 것이다.

  그 날 이후, 가정관에서 함께 생활했었던 몇몇 친구들이 수학 선생님과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어 나를 따돌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주일마다 다음 줄로 옮겨 앉는 책상 위에는 수학 선생님과 내 이름으로 낙서를 해놓았고 지워지지도 않는 낙서를 보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저희들끼리 쑤군거리기며 웃어댔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견디다 못한 나는 뒷동산에 올라 소나무 숲 속 stone bench에 앉아 울기도 여러 번이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평상심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친구들은 아무 반응이 없는 나를 오히려 더욱 더 조롱하며 괴롭혔다.

수학과목 수업 중에도 선생님과 나를 번갈아 보며 들릴 듯 말 듯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실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할 적에도 비협조적이었던 친구들 때문에 결국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 온실을 담당한 친구를 찾아갔다. 지금으로 말하면 또래상담을 하러 간 것이었다. 친구는 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의 담임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러 갔다. 안에서 문을 잠가버린 탓으로 선생님이 온실 안으로 들어오시지는 못하고 문밖에서 나를 부르고 계셨다. 나를 설득하시느라 종례시간에 참석도 못하신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결심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온갖 괴롭힘에도 버틸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해주고 이해해주는 선생님과 온실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고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자퇴하기로 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 선생님 말씀대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그까짓 일로 자퇴를 한다면 그 것은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는 것이 될 꺼야.’

선생님 말씀대로 친구들의 괴롭힘은 조금씩 시들어 갔지만 친구들의 따돌림이 끝나게 된 결정적인 것은 수학선생님의 결혼이었다.  뒤, 기가 막히고 어이없게도 친구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용서하려 노력하고 반을 위해, 반 친구들을 위해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나갔다. 그 결과 교내합창대회 때도 내가 지휘를 맡아 1학년부터 3학년까지 15개 반 중에서 1등을 차지했고, 환경심사 때도 전체 1등을 했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만일 담임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친구 옥경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운명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똘똘이 부모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관심을 갖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운동하는 시간대가 틀리지만 일부러 일찍 가서 똘똘이를 지켜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터치볼(Touch ball) 게임도 하면서 우겨대는 똘똘이 자신이 승패의 옳고 그름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똘똘이가 접하고 있는 문제점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돌림은 없어져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도 따돌림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결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아야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따돌림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건지산 기린원(麒麟苑) 안의 벚꽃이 곧 야간개방을 한다는 소식이다. 벚꽃의 꽃잎이 바람에 멀리멀리 흩날리는 것처럼 어린 똘똘이의 고통도 꽃잎처럼 멀리 날려 보내버리고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2006.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