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는 내 자리예요

2006.04.14 07:28

조은숙 조회 수:60 추천:14

거기는 내 자리예요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조은숙


소심한 나는 인터넷으로 고속버스 표를 예매하면서 좌석을 선택하느라 한참 망설였다. 몇 번째 칸에 앉아야  햇볕이 들지 않으며 안락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생과 사는 운명이라지만 같은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도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지 않던가. 마치 나의 클릭 한 번으로 내 생사가 결정되는 것처럼, 몇 번을 바꿔가며 운전석 반대좌석 혼자 앉는 세 번째 자리를 택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에 나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처음 강의실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찍 간 건 아니었지만 단 한 명만이 앉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빈자리였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을 만큼 적극적이지도, 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맨 뒤에 앉아 여유롭게 내 앞자리 동기들을 아우를 오지랖도 없다. 서너 번째 줄에 적당히 묻혀 가는 게 좋다.
내 앞에도 누군가를 앉히고(?) 내 뒤에도 누군가 앉아야 하며, 내 오른쪽은 벽이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자리가 간택되었다. 벌써 한 달을 지켜냈으니, 이름표를 붙여 놓은 건 아니지만 묵시적으로 나의 자리를 인정해 주리라. 내가 결강을 해도 내 이름보다는 "여기 앉는 여자 왜 안 나왔지?" 하며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남편과 연애할 때 자주 가던 커피숍이 있었다. 우린 늘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통 넓은 창가에 앉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앉아 있으면 그 사람들이 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 자리로 옮겨가곤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편안하고 그 커피숍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났다.
그 커피숍 주인 말에 따르면 손님들 대부분이 다음에 다시 와서도 처음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는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선호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에서 나의 소심증은 다소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10년여를 연애하면서 남편 감과 정이 많이 들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식상할 무렵 그의 주변에 새로운 여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나는 고상하고 아량 넓은 안방마님처럼 모르는 체하고 싶었는데, 그리 나쁜 사람이 못되는 남편이 내 상황이 이렇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게 아닌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거기. 내 자리예요!" 평소와 달리 존댓말을 써 가며 못을 박듯 강하게 한 마디 한다는 게, 그것이 바로 결혼 프로포즈가 되고 말았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대가로 10년 간 지켜온 고고한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에 자극을 주기 위한 자작극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다. 어쨌든 본처 기질을 발휘한 덕택에 그의 침대 옆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다.

제 아빠를 닮지 않아 싹싹한 작은 아들은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며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지치지도 않게 물어 나른다. "엄마! 이건 절대 비밀인데요." 몇 번이나 입 단속을 시키며 저랑 제일 친한 지민이 엄마가 유치원 때 아빠랑 싸우고 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고 들려주었다. 그래서 밤마다 누나가 울면 따라서 운다고 했다. 간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밥을 빨리 먹을 수 있다고도 했단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는 녀석인데, 그런 줄 알았으면 간식하나라도 더 챙겨 먹이는 건데…….이제 겨우 열 살 먹은 작은 새 같은 녀석이 평생 안고 갈 그리움에 목이 멘다. 이유야 어찌됐건 자기 자리를 팽개친 그 녀석의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특별히 행운아가 아닌 이상 한번쯤 내 자리를 박차고 싶은 마음이 왜 들지 않겠느냐 만 물리적인 좌석 하나에도 운명처럼 연연하면서 어찌 연으로 맺은 자리를 쉽게 버릴 수 있으랴.
부모의 자리, 아내 혹은 남편의 자리를 버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간혹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외친 '거기 내 자리'라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나의 권리행사는 평생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