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잣대는 올바른가요

2006.04.17 07:34

서순원 조회 수:40 추천:5

당신의 잣대는 올바른가요
                                                   행촌수필문학회    서  순  원


  내 이름은 '자'입니다. 한문으로는 尺이라고 쓰고 '척'이라고 읽지요. 사람들은 우리들 자를 보고 '잣대'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가지고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의 길이와 높이를 가늠하여,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을 평가하지요.

우리들 자를 가지고 거리를 측정하기도 하고 물건들의 길이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자기 신발의 길이는 얼마이고 양복의 기장은 얼마이며 자기의 신장은 얼마인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논밭의 면적은 얼마이며 심지어 자기가 잡은 물고기의 길이가 얼마인가를 가늠해보는 일까지 다양하고 요긴하게 우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로 잰 길이를 척도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척도라는 말속에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말하기도 한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참과 거짓, 선과 악, 그리고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자기들만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나는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한 가지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잣대가 우리들 잣대와는 엄청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잣대는 한번 규격대로 만들어지면 길이가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고 항상 그 길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만약 우리 몸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자의 생명은 그 날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속 잣대는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며 대상물에 따라 수시로 길이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자기가 휘두른 폭력은 정당방위라 하고, 상대방이 행한 폭력은 범죄행위라고 하지요. 자신의 자식을 말할 때는 항상 예쁜 것처럼 말하고, 남의 집 아이들은 항상 자기 자식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사장은 종업원들의 연봉이 너무 많다고 못마땅해 하고, 종업원들은 자신들의 보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불만입니다. 남들이 학교에 자주 찾아다니면 치맛바람이라고 하고, 자기 자신이 자주 학교에 들르는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대답하지요. 자기가 뇌물을 먹다 들통이 나면 전부터 있었던 관행이라고 하고, 남들이 뇌물을 먹는 것은 부정한 비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축소하고 남의 잘못은 크게 봅니다. 나는 이런 현상을 감히 장기단타현상(長己短他現象)이라 일컫습니다.


이런 장기단타현상은 높은 학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지식인들도 역시 자신들의 주장은 과대 포장하여 설파하고, 상대편의 주장은 왜곡시키거나 비하하기 일쑤입니다. 그들도 자기분야의 학문이나 예술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일반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인들만은 가장 올바르고 정직하리라고 믿고 있지만, 그들도 역시 자기 종교는 가장 훌륭하고 다른 종교는 사이비종교이거나 믿을만한 가치가 없는 종교로 폄하해 버리기 일쑤이지요. 그리고 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양심적이고 존경받아야할 지식인들의 집단인 정치인들을 보기로 합시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몇 개의 잣대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잣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들 정치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에 올바른 가치기준을 가지고 살던 사람도, 정치에 입문하고 특정 정당에 가입하면 그의 잣대는 소속 정당의 이익만을 위하는 잣대로 바뀌고 말지요. 도대체 무엇이 우리들 잣대와 사람들의 마음속 잣대를 이렇게 다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그 원인은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때는 상인들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 자(尺)들의 길이도 역시 크기도하고 작기도 하였답니다. 우리나라에 도량형기들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던 아주 옛날, 상인들은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잣대를 사용하기도 하였지요. 자기가 물건을 구입할 때에는 크게 만든 잣대를 사용하고, 그 물건을 남에게 팔 때에는 작게 만든 잣대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감생심,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자를 속이는 행위는 즉시 고발을 당하게 되고, 따라서 상인들의 신용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니까요.

사람들은 물건을 구분할 때 상품, 중품, 하품 등 세 가지로 구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나도 그처럼 사람들을 상중하의 세 등급으로 구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럼 먼저 하 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말해 볼까요? 그들은 자기본위이고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돈을 벌어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좋은 집에서 살면서, 육체적 안락과 향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의 가치척도는 쾌락입니다. 그 다음 중 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학문과 지식을 연마하여 남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대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기를 바라지요. 남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의 가치척도는 명예입니다. 상 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헌신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남이 즐거워할 때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내 몸처럼 남을 사랑하고 나의 행복만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소중히 생각하지요. 그들이 가장 가치 있는 행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봉사이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는 사랑과 평화의 사회이지요. 사람들이 이와 같이 세 등급으로 나누어지는 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잣대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가치판단의 잣대가 이타자(利他尺)와 이기자(利己尺)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존경하는 인간 여러분! 우리 잣대들의 창조주이신 사람 여러분! 당신의 피조물인 잣대로써 너무나 주제 넘는 말씀이지만 한 말씀만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존경하는 당신은 어느 등급에 속하는 분이며,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잣대는 올바른 잣대인가요?"  

                                (200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