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졌다고 세상이 삭막해지는 것은 아니다

2006.04.19 08:12

정현창 조회 수:51 추천:11

벚꽃이 졌다고 세상이 삭막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140호 작)


  바람이 불고 있다. 동지섣달 삭풍처럼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꽃비가 내린다. 한여름 장대비가 내리듯 꽃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 환상적이던 벚꽃이 봄바람에 수난을 당하고 있다. 자연의 질투는 너무 잔인했다. 이 밤이 새고 나면 그 화사했던 봄의 연극은 막이 내리고 벚꽃 없는 삭막하고 쓸쓸한 무대만 남겠지. 그처럼 꿈결 같은 봄날의 화려함도 사라져 버리겠지. 그리고 온 천지는 봄을 잃은 서러움에 슬피 울겠지. 내 마음도 떨어지는 벚꽃 따라 무너져 내리겠지.

  맹수의 포효와 같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밤새 악몽을 꾸었다.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보았다. 당연히 봄의 연극은 벚꽃의 퇴장과 함께 막을 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무대는 연극이 끝난 뒤의 적막함만이 있어야 했는데, 아직 연극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겨우 1막이 끝나고 찬란하고 신선한 2막이 다시 오르고 있었다. 벚꽃은 보이지 않았지만 온 무대는 연초록으로 바뀌어 있었고, 싸리나무 꽃과 탱자나무 꽃들이 등장하였다. 연분홍 진달래가 퇴장한 자리엔 핏빛 철쭉꽃들도 하나둘 무대위로 오르고 있었다. 무대 한쪽에서 부러운 듯 벚꽃을 바라보던 복숭아꽃과 배꽃이 활짝 웃고 있었다. 벚꽃이 떨어졌어도 세상은 전혀 삭막하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한다. 그렇게 좋아했던 벚꽃과 이별하듯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끝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포근했던 잠자리와의 이별과 함께 찬란한 아침을 맞는다. 가족과 아침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면 정다운 이웃과 직장 동료들이 기다린다. 보람찬 하루가 끝날 무렵엔 황홀한 저녁노을이 우리를 기다린다. 황혼마저 사라지면 하루가 끝날 것 같았는데 어느새 까만 하늘에는 찬란한 별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봄과의 이별 뒤엔 여름이 뜨겁게 포옹해준다. 여름과의 동거가 끝나갈 무렵엔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우리들을 유혹한다. 단풍이 하나둘 떨어 질 때면 모든 걸 잃는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릴 듯한데 우리들 곁에는 어느새 신나는 연말과 함께 하얀 눈들이  춤추며 찾아온다. 이처럼 이별 뒤엔 허무와 슬픔만이 남는 것이 아니다. 먹구름이 거치면 찬란한 태양이 빛나듯 항상 새로운 무대가 준비되지 않던가.

  어릴 적엔 학교에 들어가서 해마다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생활이 되고 차라리 마음 설레고 신나는 일상이 된다. 새로운 만남으로 인하여 이별쯤은 금방 잊어버린다. 아니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는 기꺼이 아꼈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 새로운 친구, 신형 전자기기를 위해 어제 사랑했던 것들과 냉정하게 이별을 해버린다. 더 많은 추억을 만들려고 새로운 만남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별은 많아지고 새로운 만남은 줄어든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선 도전이 필요할 만큼 어려워진다.
  
이별이란 결코 기쁜 일은 아니다. 크던 작던 슬픔이 따른다. 갑자기 직장을 잃거나, 하던 일을 잃은 사람들은 앞이 캄캄해진다. 평생 쌓은 명예를 잃을 수도 있다. 다정했던 친구와의 이별도 있고, 그토록 아끼던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고통을 동반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처참한 상황에 이른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자살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재벌총수도 자살하고, 고위공직자들과 지도층 인사들도 자살을 한다. 시험을 잘못 치른 학생들도 자살하고, 빗 독촉에 시달려 가족동반자살도 한다. 심지어 자살사이트도 성업 중이란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견디기 힘든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자살을 선택해야 했을까. 죽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왜 괴롭고 힘든 일 뒤에서 웃고 있는 다른 선물은 보지 못했을까.


벚꽃이 떨어졌다고 세상이 삭막하지 않듯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도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다. 주위를 돌아보면 이별을 대신하여 함께하여 줄 기쁜 일들이 항상 웃고 있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지켜보는 바람에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림자가 있으면 뒤쪽엔 반드시 눈부신 태양이 빛나고 있다.”고 하였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별을 했다고, 힘든 일이 생겼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들의 뒤쪽에는 반드시 다른 기쁨이 숨어 있을 테니까. 외롭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열려있는 또 다른 행복의 문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06.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