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불륜
2006.04.19 18:30
아름다운 불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남순애
난 지금 깊은 사랑에 빠져 있다. 내 마음속엔 이미 오래 전부터 남편말고도 사랑하는 한 남자가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자꾸만 이 남자에게 빠져든다. 남편과 결혼 한 뒤 2년 만에 이 남자를 알게 되었으니까, 아마 10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하늘이 별 없이 살 수 없고 별이 하늘 없이 살 수 없듯, 난 이 남자 없이는 삶의 의미조차 없다. 가끔 눈을 마주치며 비밀스럽게 나누는 대화가 달콤하고, 그와의 스킨십이 한없이 날 들뜨게 한다. 나를 포근히 안아 줄 때면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다. 남편이 질투심에 불타올라 등을 돌리는 날이 올지라도, 난 이 남자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무리 세상이 날 비웃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내 결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다른 새로운 여성이 이 남자를 찾아와 그의 모든 마음을 빼앗아가 버려 그 남자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남자는 영원한 내 남자이니까.
키 170센티미터에 몸무게 58킬로그램, 다소 마른 체형에 여자처럼 유난히 희고 보드라운 피부, 무덤처럼 봉긋 솟아 오른 매력적인 엉덩이, 그리고 매끄러우면서도 길고 긴 손가락, 크지 않은 눈으로 날 향해 웃으면서 손이라도 잡을 때면 내 가슴은 쿵쾅쿵쾅 방방이질이 시작된다.
사랑을 시작한지 4년 되던 해 어느 봄날, 환희에 가득 차 상기된 얼굴로 내 손을 끌고 가서 보여준 노란 민들레.
"너무 예뻐요!”하면서 이 남자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때의 작고 앙증맞은 민들레가 지금도 내 가슴에는 노랗게 피어 있다. 이 남자는 자신이 경험한 자연의 아름다운 신비를 나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차 오른다.
이처럼 나에게 온통 설렘과 기쁨을 주는 이 남자에겐 고쳐지지 않을 고약한 버릇이 있다. 마치 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건망증이란 또 다른 이름표, 뭔가에 골똘히 빠져 있을 땐,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다른 별[星]에 태어나야 할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 같은 그 별을 그리워하다가 날 영영 잊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마저 든다.
이 남자는 얼마 전에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걱정도 잠시였고 내내 허전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몰래 내내 속을 끓여야 했다.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후리지아 꽃향기도 여기저기 곳곳에 뿌려 두었고, 유독 좋아하는 불고기도 마련해 두었다. 그새 헬쓱해진 이 남자를 눈물이 먼저 알아차렸다. 이 남자도 내가 많이 그리웠는지 날 껴안고 볼에 뽀뽀를 해댔다. 몇 번의 여행에도 항상 빈손이었던 이 남자의 손에 들려진 커다란 선물 꾸러미들은 한라봉 두 상자였다. 그리고 유자 향이 나는 비누와 백련초 초콜릿이었다. 얼마 전에 한라봉을 맛있게 먹던 나를 생각하며 골랐을 것이다.
"그렇게 맛있어요?”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이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행길에 이 커다란 짐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남들에겐 쉬운 이런 것들이 이 남자에겐 너무나 버거웠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였기에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면서 말을 머뭇거렸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비행기 안에 두고 내렸단다.
"오~~~~~~~~ 하나님!" 하지만 공항에서 보내 줄 거라는 연락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내 등을 토닥여 준다. 이 여행가방과 맞바꾸게 된 선물 꾸러미가 조금 전과는 달리 한낱 작고 보잘 것 없는 보따리로 다가왔다. 이 남자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내 가볍고도 간사한 마음 때문인지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때로는 무한할 것 같은 사랑도 이렇게 소심하게 줄어들 때가 있다.
건망증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았던 사건들이 내 사랑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더 큰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삶이 연극이라면, 기억은 주연, 건망은 조연쯤 되지 않을까? 주연과 조연이 조화롭게 톱니바퀴 맞물리듯 돌아가야 좋은 연극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삶도 기억과 건망이 어우러져야 할 것임엔 틀림이 없다. 이 남자의 조금 지나친 건망증이 조금 불편할 뿐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 것도 큰 형벌일 것이다. 가슴 아픈 기억도, 슬픈 사연도 건망이란 이름아래 묻어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생활에 '그러나’ 법칙을 이용하면 삶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라고. 이 남자는 유독 건망증이 심하다. 그러나 집중력은 대단하다.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그러나 마음은 따뜻하다. 지적이 날카롭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눈은 언제나 순수하다. 욕심이 없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이 남자는 그 날 밤 조용히 다가와 껴안으며 나에게 물었다.
"건망증도 병이겠죠? 병 때문에 날 싫어하진 않으실 거죠?”
어찌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할 것이다. 아니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이제 겨우 15년의 삶을 살아 온 이 남자! 아들이 아닌 언제나 나의 아름다운 연인이길 기도해 본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남순애
난 지금 깊은 사랑에 빠져 있다. 내 마음속엔 이미 오래 전부터 남편말고도 사랑하는 한 남자가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자꾸만 이 남자에게 빠져든다. 남편과 결혼 한 뒤 2년 만에 이 남자를 알게 되었으니까, 아마 10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하늘이 별 없이 살 수 없고 별이 하늘 없이 살 수 없듯, 난 이 남자 없이는 삶의 의미조차 없다. 가끔 눈을 마주치며 비밀스럽게 나누는 대화가 달콤하고, 그와의 스킨십이 한없이 날 들뜨게 한다. 나를 포근히 안아 줄 때면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다. 남편이 질투심에 불타올라 등을 돌리는 날이 올지라도, 난 이 남자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무리 세상이 날 비웃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내 결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다른 새로운 여성이 이 남자를 찾아와 그의 모든 마음을 빼앗아가 버려 그 남자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남자는 영원한 내 남자이니까.
키 170센티미터에 몸무게 58킬로그램, 다소 마른 체형에 여자처럼 유난히 희고 보드라운 피부, 무덤처럼 봉긋 솟아 오른 매력적인 엉덩이, 그리고 매끄러우면서도 길고 긴 손가락, 크지 않은 눈으로 날 향해 웃으면서 손이라도 잡을 때면 내 가슴은 쿵쾅쿵쾅 방방이질이 시작된다.
사랑을 시작한지 4년 되던 해 어느 봄날, 환희에 가득 차 상기된 얼굴로 내 손을 끌고 가서 보여준 노란 민들레.
"너무 예뻐요!”하면서 이 남자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때의 작고 앙증맞은 민들레가 지금도 내 가슴에는 노랗게 피어 있다. 이 남자는 자신이 경험한 자연의 아름다운 신비를 나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차 오른다.
이처럼 나에게 온통 설렘과 기쁨을 주는 이 남자에겐 고쳐지지 않을 고약한 버릇이 있다. 마치 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건망증이란 또 다른 이름표, 뭔가에 골똘히 빠져 있을 땐,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다른 별[星]에 태어나야 할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 같은 그 별을 그리워하다가 날 영영 잊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마저 든다.
이 남자는 얼마 전에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걱정도 잠시였고 내내 허전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몰래 내내 속을 끓여야 했다.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후리지아 꽃향기도 여기저기 곳곳에 뿌려 두었고, 유독 좋아하는 불고기도 마련해 두었다. 그새 헬쓱해진 이 남자를 눈물이 먼저 알아차렸다. 이 남자도 내가 많이 그리웠는지 날 껴안고 볼에 뽀뽀를 해댔다. 몇 번의 여행에도 항상 빈손이었던 이 남자의 손에 들려진 커다란 선물 꾸러미들은 한라봉 두 상자였다. 그리고 유자 향이 나는 비누와 백련초 초콜릿이었다. 얼마 전에 한라봉을 맛있게 먹던 나를 생각하며 골랐을 것이다.
"그렇게 맛있어요?”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이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행길에 이 커다란 짐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남들에겐 쉬운 이런 것들이 이 남자에겐 너무나 버거웠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였기에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면서 말을 머뭇거렸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비행기 안에 두고 내렸단다.
"오~~~~~~~~ 하나님!" 하지만 공항에서 보내 줄 거라는 연락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내 등을 토닥여 준다. 이 여행가방과 맞바꾸게 된 선물 꾸러미가 조금 전과는 달리 한낱 작고 보잘 것 없는 보따리로 다가왔다. 이 남자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내 가볍고도 간사한 마음 때문인지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때로는 무한할 것 같은 사랑도 이렇게 소심하게 줄어들 때가 있다.
건망증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았던 사건들이 내 사랑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더 큰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삶이 연극이라면, 기억은 주연, 건망은 조연쯤 되지 않을까? 주연과 조연이 조화롭게 톱니바퀴 맞물리듯 돌아가야 좋은 연극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삶도 기억과 건망이 어우러져야 할 것임엔 틀림이 없다. 이 남자의 조금 지나친 건망증이 조금 불편할 뿐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 것도 큰 형벌일 것이다. 가슴 아픈 기억도, 슬픈 사연도 건망이란 이름아래 묻어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생활에 '그러나’ 법칙을 이용하면 삶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라고. 이 남자는 유독 건망증이 심하다. 그러나 집중력은 대단하다.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그러나 마음은 따뜻하다. 지적이 날카롭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눈은 언제나 순수하다. 욕심이 없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이 남자는 그 날 밤 조용히 다가와 껴안으며 나에게 물었다.
"건망증도 병이겠죠? 병 때문에 날 싫어하진 않으실 거죠?”
어찌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할 것이다. 아니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이제 겨우 15년의 삶을 살아 온 이 남자! 아들이 아닌 언제나 나의 아름다운 연인이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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