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높고 물 맑은 강원도 여행

2006.04.22 20:46

황점숙 조회 수:121 추천:23

산 높고 물 맑은 강원도 여행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황점숙


여고동창친구들과 강원도 일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 물색에서부터 교통편과 숙박시설 예약까지 총무인 내가 모두를 도맡았다. 여행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벅찬 과제였기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여행 코스를 찾았다. 여행일정은 1박 2일이 적당하고, 밀리는 휴가철이 되기 전에 다녀오자는 조건이었다. 세 곳을 선정해 메일로 보내 주고 결정된 곳이 강원도 일주였다. 춘천으로 가서 남이섬을 구경하고, 소양강댐을 구경한 뒤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낙산사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낙산사가 2005년에 대형 산불로 불에 타기 이태 전의 일이었다.

여고를 졸업하던 해 모임을 하나 만들자는 친구의 제의를 받았다. 학창시절 나와는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닌 친구들이라 망설이다가 나간 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변함 없이 모이고 있으니 죽마고우가 부럽지 않은 사이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갹출한 회비 가운데 절반은 적금을 넣고, 점심을 먹은 뒤 남은 돈은 모아서 연말엔 남편들을 초대하여 송년 모임도 갖는다. 적금을 넣기 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모임을 가졌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부부들 모임으로 축소되었다.

우리 일행은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처럼 들뜬 기분으로 강원도로 떠났다. 전주에서 7:30분 출발하여 도중 대전에서 그곳에 사는 친구와 합류해서 차 한 대에 옮겨 탄 뒤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한 친구의 남편이 결석하여 7명만 떠나게 되었다. 일행은 만년 소녀 같지만 빼어난 음식솜씨를 자랑하는 대전 친구가 준비해 온 유부초밥으로 아침을 챙겨 먹었다. 확 트인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여행의 즐거움은 시작되었고, 목적지까지 가는 긴 시간은 총무의 소임으로 준비한 과일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유쾌한 농담 시간을 가졌다. 여행의 즐거움은 구경하는 것 못지 않게 먹는 즐거움이 크지 않던가! 내가 밤잠을 설치고 준비한 찰밥을 내놨더니 이구동성으로 총무가 제일이라며 비행기를 태웠다. 어느새 오디오에서 나오는 신나는 트로트 가요가 우리들의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우리의 첫 도착지는 남이섬이었다. 남이 장군의 묘가 있다고 해서 '남이섬'이라 불린다고 했다. "사나이 스무 살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부끄럽다."는 유명한 시를 남긴 남이 장군을 떠오르게 하는 남이섬은 7,80년대에는 우리 연배의 대학생들의 엠티 명소였으며 강변가요제 개최지로 더 알려진 곳이다. 북한강의 수중 섬인 남이섬은 면적 약 14만평, 둘레 약 4km로 1965년부터 수재 민병도 선생이 모래와 땅콩 밭에 불과하던 황무지에 처음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오늘의 자연림과 잔디밭이 가꾸어졌다고 했다. 잣나무 길, 메타세콰이어 길, 은행나무 길, 자작나무 길이 수많은 연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잣나무 길과 메타세콰이어 길을 젊은 연인들 못지 않게 뽐내며 걸었다.
지난 2001년 12월 윤석호 감독이 제작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성공하면서 아시아의 주요 테마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기도 해서 관광객 중에는 낯 선 외국인들도 많았다. 환상의 섬으로 불려지는 남이섬 드라마 촬영 흔적이 있는 곳에서 멋진 포즈도 취해보고 녹음 짙은 나무그늘에서 더위도 식히면서 바쁜 일정이지만 여유를 부려봤다.

혼자 온 친구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기도 했다. 친구 남편이 바쁜 일이 있어 오지 못했다는 말은 핑계임을 우리는 짐작한다. 시부모님이 안 계신 탓일까. 친구는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유난히 힘들게 살고 있다.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아직도 집 한 칸 없는 가난한 생활이다. 얼마 전 다단계에 빠져들면서 부부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렸다. 집 전화까지 통화가 두절될 정도로 살림이 궁색하여 친구가 힘든 주방 일을 한지 오래되었다. 힘든 생활에도 큰딸을 대학공부까지 시키는 친구를 보면 마치 70년대 우리 친정 부모님 생각이 난다. 우리는 친구가 모든 근심 걱정을 다 잊고 오직 여행의 즐거움에 푹 빠지도록 배려를 했다.

남이섬을 나온 우리 일행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서둘렀다. 한사코 소문난 춘천닭갈비와 춘천막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미식가인 친구 남편의 주장에 따라 춘천의 명동으로 들어갔다. 친구 남편은 며칠 전 TV에서 춘천의 음식 명소를 소개하는 걸 보면서 기억해 뒀다면서 행인들에게 방송된 "ㅅ"으로 시작되는 음식점을 아느냐고 물었다. 춘천사람들은 오히려 관심이 없다는 듯 소문난 닭갈비 골목만 가르쳐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열정은 시작부터 간판만 주시하면서 골목 끝까지 'ㅅ'으로 시작하는 간판을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결국은 손님 많은 곳으로 들어가는 걸로 합의를 봤다. 확실한 대접을 받고 싶은 우리는 저 멀리 전주에서 닭갈비 먹으러 왔다며 맛있게 요리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 할머니의 넉넉한 풍채만큼 양은 푸짐했다. 역시 맛도 일품이었다. 닭갈비에 배가 불렀지만 본토 막국수 맛까지 보고 나니 포만감에 졸음이 찾아 들었다. 숙박을 하고 다음날로 일정을 잡자는 의견이 있어 한참 논란을 버리다 결국은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소양강댐 주변에 왔을 때는 과다한 점심 식사로 소화제가 필요했다. 소주 한 잔과 커피를 소화제로 마시자니, 시원한 바람이 여름 더위를 식혀주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소양강댐에 가지 말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들렀는데 대 만족이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저절로 흘러나오는 '소양강 처녀'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댐의 웅장함에 감탄하면서 한 시간여 동안 댐 주변에서 머물렀다. 관광지 춘천의 화려한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춘천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틀째, 일행은 지도를 보면서 속초를 향해 구불구불 산길을 달렸다. 울창한 숲의 매력에 빠져들었는지 듬직한 나무들이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숲 속의 우뚝우뚝한 나무들의 미끈한 다리를 보자니 마치 꽃다운 새색시 속치마 속의 각선미를 훔쳐보는 느낌이다 싶어 혼자 미소를 지었다. 굽이굽이 산길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돌며 내려가자니, 한동안 잊었던 차멀미를 하고 말았다. 고생 끝에 도착한 한계령은 웅장한 그 자태가 나를 압도했다. 수려한 산악 경치에 연신 사진 셔터를 눌러댔고 정상에서 먹어본 통감자 구이는 별미였다.

관동팔경에 꼽히는 낙산사(洛山寺)에 도착했다. 낙산사의 위치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이란다. 절이 858년 범일에 의해 중건된 뒤 여러 차례 불에 타서 거듭 중건되었으나 6. 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1953년과 1976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했다. 건물로는 원통보전(圓通寶殿)  종각(鐘閣)  일주문(一柱門)  선당(禪堂)  승당(僧堂)  객실(客室) 등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 유적은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 낙산사 7층 석탑(보물 제499호), 낙산사홍예문(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사원장(강원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 홍련암(강원도유형문화재 제36호), 양양낙산사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낙산사 아래 동해바다의 시원함에 흠뻑 취해 구경하고 주문진 회센터에서 신선한 회로 점심을 들고 특산품인 오징어까지 선물로 사서 차에 넘치도록 실었다. 혼자 온 친구도 남편에 대한 미안함도 잊었는지 연신 즐거운 표정이었다, 좋아하는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지 못하고 꾹꾹 참으며 운행을 책임진 대전 친구 남편의 안전운전으로 우리 일행은 이틀 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역시 강원도는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였다.